지난 4월23일부터 사흘간 베이징에서 열린 북한 미국 중국간 3자 회담이 확정되기 전 미 국방부는 회담준비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전후 이라크 처리에 정신을 쏟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회담을 준비해온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의도적으로 준비 사실을 숨겼다는게 미국 언론의 분석이었다. 파월 장관은 럼즈펠드장관이 회담 준비 과정에 개입할 경우 회담이 무산될 것을 우려,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시켰다는 것이다. 대북 강경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국방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는 한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어긴 북한에 또다시 속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 군사정책에서 극우로 단장한 럼즈펠드 장관이 이같은 매파들의 핵심이다. 베이징 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후 매파들은 "우리가 미리 얘기 했잖아(We told you so)"라며 회담을 주도한 비둘기파들을 비꼬았다. 매파들은 김정일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얼마전 뉴욕타임스는 국방부 관리들이 만들어 행정부의 주요 각료들에게 돌린 비밀 메모를 폭로했다. 메모의 요지는 "미국은 중국과 힘을 합쳐 김정일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라크에서 성공을 거둔 체제변화를 북한에 대해서도 시도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방법론은 차이가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이라크와 달리 군사공격을 선택하지 않고 중국을 활용,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넣는다는 것이다. 럼즈펠드 장관이 군사공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군사공격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모든 선택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북한의 보복공격과 그로 인해 서울이 입을 참사를 감안할 때 군사공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매파들은 군사공격 대신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총동원,북한 체제를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리들이 만들어 돌린 비밀 메모는 이같은 강경파들의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비밀 메모의 내용이 미 행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파월 장관을 축으로 한 비둘기파는 여전히 대화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제거를 바라고 있다. 체제변화를 공식적으로 얘기해 본 적도 없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대립되면서 미국의 북핵 해법도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 회담 후속 일정도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싸움에 따라 미국의 대북 정책이 춤을 추고 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