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외곽 지역인 클리쉬에 있는 로레알의 샤를 츠비악(Charles Zviak) 연구개발(R&D)센터.로레알 본사에서 차량으로 5분 정도 떨어진 이곳에 들어서자 화장품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랑콤''헬레나 루빈스타인''비오템'….이름만으로도 전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장품 브랜드들이 잉태되는 곳. "로레알의 1백년 역사는 R&D의 역사입니다." 안내를 담당한 커뮤니케이션 총책임자 파트리시아 피노 박사의 첫마디였다. 이 R&D센터야말로 세계 1위의 화장품 그룹 로레알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전세계 화장품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화장품 산업의 '메카'라는 얘기였다. 피노 박사는 "지난해 4억6천9백만 유로(약 6천97억원)를 순수 R&D에 투자하는 등 로레알 그룹은 매년 매출액의 3%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학자(유젠 슈엘레르)가 세운 회사답게 화장품 산업에 '과학'으로 접근한 것이 로레알의 가장 큰 성공전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로레알이 획득한 특허수는 모두 5백1개.하루 평균 1개 이상 새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셈이다. 연구소의 첨단장비와 시설은 이같은 놀라운 숫자가 결코 허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실시간으로 머리카락의 생성과 퇴화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첨단장비와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티노사이트 색소를 배양하는 실험실 등은 웬만한 나라에선 국립연구소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비이커에 담긴 인공 피부.가로세로 1㎝ 정도의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이 인공피부는 사람 피부와 똑같은 각질층과 면역체계를 지니고 있어 다양한 임상실험에 이용되고 있다. 연구소 직원은 "인공피부야말로 로레알의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정수"라며 "지난 90년대초 세계 최초로 개발돼 화장품의 효능과 안전성을 실험하는 데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상 치료에 사용되고 있어 의료기술 발전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로레알의 연구개발에 있어 또 다른 핵심 전략은 '지오코스메틱(Geo-cosmetic)'.동·서양,백인 흑인 동양인 등 다양한 피부 타입에 맞는 화장품을 개발해 효과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화장품의 로컬라이제이션(지역화)'이다. 여기에는 인종간 생물학적 특성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와 관습도 중요한 연구과제가 된다. 이를 위해 로레알은 미국 일본 등 전세계에 17개 연구소를 두고 화학자 생물학자 의사 등 2천8백23명의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여성들은 화장품 냄새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에요. 그래서 뚜껑을 열자마자 화장품에 코부터 갖다대죠.이런 문화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향기에 특별히 신경을 쓴답니다." 로컬시장 공략의 사례로 한국을 꼽는 피노 박사. 한국 사람보다 한국 고객을 잘 알고 있는 듯한 그의 말에 가벼운 전율까지 느껴졌다. 파리=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