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 < 경희대 교수 >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실세집단'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성장했다. 여러 사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여론을 주도할 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의제 설정과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고위 공직에 오른 사람들도 늘고 있다. 심지어 시민단체의 직함을 갖고 정부 위원회 위원을 겸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낙선운동 대상자라도 되면 치명적이다. 이처럼 커진 시민단체의 영향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긍정적 효과도 있다. 시민의 목소리가 증폭되면서 민주주의 가치와 시민의식이 함양될 것이라고 기대해 봄직하다. 또 개혁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 기여할 수도 있다. 특히 시민단체의 공익 지향성은 사회의 지나친 파편화와 원자화를 막고 공동선과 공공정신을 상기하는 효과를 내는데 중요하다. 그러나 높아진 시민단체의 정치적 위상 이면에는 위험한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시민단체가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하고자 과욕을 부릴 때 함정은 현실화될 수 있다. 문제의 근본은 각 시민단체가 통일된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자발적으로 생긴 시민단체들이 다양한, 때로는 상충되는 입장을 표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시민단체 모두가 동등하게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부만 그런 특권을 향유하게 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균형을 유지하고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특정 성향의 일부 시민단체만 정책 결정에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다양성과 균형성이라는 민주적 국정 수행의 핵심 가치가 훼손된다. 시민단체는 정치권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자제의 미(美)다. 그래야 정치권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시민단체들은 각기 의견을 적극 표출하고, 정치권은 그 속에서 균형적 조정을 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정치적 결정까지 직접 하겠다는 과욕을 부릴 때 오히려 민주주의와 진정한 개혁은 저해된다는 점을 반추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