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지분을 집중 매입해 SK그룹의 지배구조를 뒤흔든 크레스트증권은 재벌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재계의 공방에 예기치 못한 변수로 등장했다. 크레스트측은 장기투자자임을 강조하면서 'SK㈜의 지배구조 개선' 등을 SK 주식매집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은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을 시도하는 공격자가 여론전략으로 으레 하는 말이어서 크레스트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재벌규제 정책이 기업에 대한 과잉규제로 작용해 국내 기업들을 적대적 M&A에 노출시킨다'는 재계의 지적이 힘을 얻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이번 사건은 SK㈜의 그룹지배력 약화를 가져와 SK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일지 모르지만,그 만큼 투자자들에 의한 견제와 감시가 강화되고,SK텔레콤 등의 독립·투명 경영이 가속화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벌규제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일반적인 논란을 떠나서,이번 사건은 그 동안 재계가 주장해온 '적대적 M&A 노출 가능성' '외국기업에 대한 역차별'문제를 새롭게 인식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재계의 주장을 개혁에 대한 도전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적대적 M&A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주도면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번 SK㈜ 사태에서 드러난 정부의 대응방법은 단편적이고 편법적인 성격이 강했고,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법체계가 미비되어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먼저 공정위가 SK㈜를 외국인투자촉진법상의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분류,출자총액제한제도의 예외조항을 적용하기로 했지만,예외축소 등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강화를 도모하고 있는 공정위로서는 자가당착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문제의 예외조항인 공정거래법 제10조 1항 3호는 기업이 '외국인투자유치를 위하여' 외국인투자기업의 주식을 취득ㆍ보유하는 경우를 출자총액제한의 예외로 규정하고 있는데,이 조항의 문구만을 보면 외국인투자 유치와 아무 상관도 없는 SK㈜ 사례에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이 조항은 그 동안 편법적으로 확장 해석돼 왔고,공정위는 SK그룹의 경영권 방어를 가능케 하기 위해 이러한 확장 해석 관행을 받아들여 SK㈜에 대해 SK계열사 보유주식의 의결권 제한을 풀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정보통신부도 전기통신사업법에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소유제한 규정을 두면서 지배주주가 국내 상장법인이라 하더라도 외국인이 지분을 단지 15%만 소유하면 해당 국내법인이 외국법인으로 바뀌게 되는 시행령 제3조의 허점을 간과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즉 이러한 허술한 규정으로 인해 기간통신사업자의 지배주식을 보유한 국내법인들이 언제든지 '외국인'으로 전락해 보유주식을 처분해야 하거나 의결권을 제한당하고,그 결과 지배주주로서의 지배권을 하루 아침에 상실할 수도 있게 된 것은 어불성설이다. M&A의 활성화를 통해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주주중심 경영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M&A의 대상인 '경영권'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한다면,경영권을 둘러싼 경쟁은 공격자든 방어자든 '평평한 싸움터(level-playing field)',즉 공정하고 공평한 시장'룰'에 의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이러한 뜻에서 차제에 외국인의 적대적 M&A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기간산업의 범위나 기준을 분명히 정하고,관련 법령이나 제도를 정비하여 탈법적인 M&A 시도를 막아야 할 것이다. 또 국내 기업이 외국의 적대적 M&A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 출자총액제한에 대한 예외를 분명히 인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내 지배주주에게 공평한 방어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은 '방위산업체'에 대해서만 외국인투자를 허가제로 묶어 제한하고 있지만 대상을 확대할 필요성은 없는지 따져 볼 때다. dskim@shin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