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9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사실상 장악함에 따라 개전 3주만에 중대한 전황의 변화를 맞게 됐다. 미군 지휘부는 바그다드 전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인식하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티크리트 공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그다드 시내에는 이날 상당수 시민이 몰려나와 미군의 진격을 환호로 맞이한 가운데 곳곳에서 약탈 행위가 자행되는 등 전쟁의 혼돈상이 그대로 연출됐다. 이어 이날 오후 미군 탱크들이 바그다드 중심부로 진입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바그다드 함락 임박= 미군이 바그다드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진격함에 따라 바그다드 완전 장악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취재진과 목격자들이 전했다. 티그리스강 서안을 차지하기 위해 지난 48시간동안 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온 이라크군은 이날 오전부터 산발적인 저항을 하는데 그치는 등 전력이 급속히 소진된 모습이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파리에서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마친 뒤 "교전 상황이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 제1 해병원정군은 전날인 8일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남동쪽 5㎞ 떨어진 알-라시드 공항을 접수한 데 이어 이날 디얄라강을 넘어 도심으로 진격, 교도소 하나를 장악하고 이라크군이 설치한 방벽에 불을 질렀다. 또한 미 제5군단 산하 병력들도 바그다드 북부로 포위망을 계속 좁혀들어가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바그다드 북쪽에서 미군이 이동하는 것이 목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그다드 북동쪽 사담시티에는 장갑차의 지원아래 미군 병력이 진격해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됐으며, 티그리스강 양안을 따라 진격 중인 미군은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합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고 취재진은 밝혔다. 그러나 후세인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이라크 및 아랍 민병대 수십명은 이날 오전 전세가 극히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 바그다드 동부의 알-줌후리야 교량에서 미군에 맞서 완강히 저항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환영과 약탈...극심한 혼돈= 바그다드 시민들은 이날 도심을 향해 진격해 들어오는 미군을 향해 "굿, 굿, 부시"라고 외치며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고 취재진은 전했다.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3㎞ 가량 떨어진 하바비야 구역에서는 수백명의 군중이 해병대원들을 태운 7대의 전투차량을 환영하면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거대한 초상화를 찢기도 했다. 바그다드 동쪽에서는 전날 피란길을 떠났던 주민들이 되돌아왔으며, 사담 시티에서는 주민들이 지난 밤 사이 미군이 진입하기에 앞서 사담 페다인 민병대원들을 몰아냈다는 미확인 보도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바그다드 함락이 임박해 지면서 시내 전체가 전시 무정부 상태에 빠져 광범위한 약탈 행위가 자행되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사담시티에서는 주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진격하는 미군에 환호를 보내면서 환영했지만 한편에서는 상점에 몰려가 문과 창문을 마구 부수고 가구, 식량, 가전제품 등을 들고 나왔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사담시티는 그동안 이라크 집권세력인 수니파에 의해 탄압과 핍박을 받아온 시아파 주민들이 몰려사는 빈민지역이다. 또 바그다드 중심부의 정부청사와 경찰서, 올림픽위원회 본부 등 관공서도 약탈의 대상이 됐다. 특히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떼지어 무역부 청사에 몰려가 에어컨, 냉장고, TV 등을 들어내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들중 일부는 정부청사에 걸린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초상화를 부숴버리기도 했다. ◇"다음 목표는 티크리트"= 미군 지휘부는 바그다드 전투가 거의 마무리됨에 따라 후세인 대통령의 고향인 티크리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바그다드 북쪽에 위치한 티크리트에는 아직 이라크군이 상당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후세인 대통령이 이 곳을 최후의 항전 장소로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미군은 이미 지난 24시간 동안 티크리트의 주요 군사목표에 대해 집중 공습을 가하는 등 본격적인 공세를 위한 정지작업에 나섰다. 한편 후세인 대통령의 생사 여부와 관련, 영국 언론들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미군의 `조준공습'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 같다고 정보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가디언은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그(후세인)가 7일 미군의 폭격때 건물안에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더 타임스도 "영국의 해외정보국(MI6)이 미 중앙정보국(CIA)에 후세인이 미국의 폭격 직전에 바그다드의 피폭된 건물에서 빠져나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영국의 한 정보소식통의 말을 빌려 "우리는 후세인이 그 곳에 도착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빠져나갔다"면서 "그가 차로 빠져나갔는지 혹은 지하터널을 이용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종군기자.민간인 희생 확산 = 미군이 아랍어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의 바그다드 사무실을 미사일로 폭격해 기자 1명이 숨지고 카메라맨 1명이 부상했다. 바그다드 시내의 팔레스타인 호텔도 미군 탱크의 포격을 받아 영국 로이터 통신기자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으며, 스페인 TV의 카메라맨 1명이 목숨을 잃는 등 전쟁을 취재중인 기자들의 희생이 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91년 걸프전 때는 43일의 전쟁기간에 숨진 언론인이 단 한 명도 없었으나 이번 전쟁에서는 21일째로 접어든 7일 현재 모두 1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이라크전에서는 상당수 언론인들이 미군의 무분별한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전장의 언론 자유와 언론인 신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편 바그다드 시내의 교전이 격화되면서 미군의 경우 7일까지 89명이 사망하고 155명이 부상했다. 또 7명이 포로로 잡혀 있으며 8명은 실종된 상태다. 영국군 사망자는 3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워싱턴.바그다드.쿠웨이트시티=연합뉴스) 김대영.임상수.옥철 특파원 kdy@yna.co.kr nadoo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