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악재들로 둘러싸여 있던 한국 경제에 탈출구가 열리고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미 공조 회복 조짐 유가 안정 국가신용등급 유지 및 세계경제 호전 가능성 등 희망적인 소식들이 날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외 악재가 해소되면 투자심리가 회복되고 소비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점차 커지고 있다. ◆ 외화자금 조달비용 '하락' 북핵 문제로 파열음을 냈던 한.미 관계가 이라크전쟁 파병 동의안 처리 이후 회복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두 차례 전화(3월12일, 4월4일)를 걸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화답한 것이 중요한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폴 울포위츠 미국 국방부 부장관도 최근 "북한은 이라크 사태와 대단히 다르다"며 평화적인 해결책을 강조했다. 북핵 문제로 냉각됐던 한.미관계가 복원될 조짐을 보이면서 시장의 반응도 달라졌다. 만기가 5년 남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산금리는 미국의 '영변 폭격설'이 나온 후 1.95%포인트(3월12일)까지 치솟았다가 지난 8일 현재 1.35%포인트로 안정됐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해외시장에서 한국계 은행들이 빌리는 1년만기 외화차입금 금리도 지난 2월 6개월물 리보(런던은행간 금리)보다 0.3%포인트 이상 벌어졌다가 최근 외평채 가산금리가 떨어지면서 동반 하락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 국제유가 안정으로 민간소비 증가 미.이라크 전쟁의 조기 종결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22∼23달러(두바이유 기준)로 떨어졌다. 전쟁 전 배럴당 30달러까지 치솟았던데 비해 25%가량 하락했다. 석유관련제품은 민간소비 지출에서 10.7%(2002년)를 차지하고 있다. 유가가 하락하면 석유관련제품 지출액이 줄어드는 만큼 다른 부문에서의 소비 여력은 커진다. 재경부는 유가가 25% 하락할 경우 타부문 민간소비가 2.6∼2.7%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심상달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유가 하락으로 물가도 안정될 것"이라며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회사 수익도 증가하기 때문에 민간소비도 그만큼 숨통을 틀 여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올들어 3개월 연속 적자인 무역수지도 흑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난 1.4분기중 무역적자(8억4천만달러)의 상당 부분은 유가상승 탓이었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는 유가가 배럴당 1달러 떨어지면 무역수지가 연간 9억달러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 국가신용등급 유지 전망 토머스 번 무디스 부사장은 9일 "북한 상황에 심각한 변화가 없다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최근 한국 주식시장에서 순매수로 돌아서는 등 관심을 다시 높이고 있다. 세계 경제의 회복 가능성도 긍정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7,8일 파리에서 열린 실무정책회의에서 "고유가로 인해 세계 경제가 후퇴기로 접어들 가능성은 없다"며 세계 경제에 대해 낙관했다. ◆ 본격 회복 낙관은 일러 그러나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불안요인들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남아 있고 종전 이후 국제 갈등도 예상된다. 유가가 급등하거나 북한이 미국의 다음 공격대상으로 거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구조적인 문제들도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재정적자, 일본의 경기 침체, 유럽의 저성장은 세계 경기 회복에 짐이 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 것은 과잉설비,과도한 부채, 회계부정 때문"이라며 "종전후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도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해 미국 경제가 자칫 침체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를 짓눌러온 요인들이 부분적으로 호전되고 있지만 전반적인 경기회복을 단언하기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