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 침체에 이라크전쟁,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쇼크가 겹치면서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어서다. 석유화학업계를 비롯한 일부 업종은 이미 설비가동률을 낮추는 등 감산체제에 돌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쌓여 있는 재고보다는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는 재고증가 속도가 더 심각한 문제"라며 "조업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산은 조만간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섬유업계 한 관계자는 "재고 누증으로 조업단축이 불가피하지만 춘투를 앞두고 노조를 자극할 것이 우려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석유화학=전반적인 감산 체제에 돌입했다. 최대 수요처인 중국이 거의 구매를 하지 않고 있어서다. SK㈜는 나프타 분해설비(NCC) 가동률을 95%대로 낮췄다. 현대석유화학도 지난 2일 예정에 없던 정기보수를 실시,50만? 규모의 NCC 설비 가동을 중단했다. 현대유화 관계자는 "최근 유화제품 하락세가 지속돼 대산공장의 정기보수를 고려해왔다"고 밝혔다. 업체들의 정기보수도 이어지고 있다. 여천NCC는 3월말부터 오는 29일까지 NCC 1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한화석유화학도 7일부터 21일까지 선형저밀도폴리에틸렌(LLDPE) 생산을 중단키로 했으나 가동중단 기간을 1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삼성종합화학도 28일부터 정기보수를 이유로 일부 설비의 가동을 멈출 계획이다. ◆자동차=판매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작년 연말 1만5천대 수준이던 재고가 6만6천대 수준으로 늘었다. 자동차업체들은 판매위축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문이 밀려있는 차종이 상당수 있는데다 재고도 적정수준을 밑돌고 있어 판매위축이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밝히고는 있으나 예상을 넘어서는 재고증가 속도에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초 판매율이 뚝 떨어지면서 1만8천대에 불과했던 재고수준이 최근 3만5천대 규모로 늘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적정재고수준인 4만3천대를 넘어설 경우 조업률을 낮추는 방안도 생각해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GM대우도 조기정상화를 위해 서둘러 2교대 근무에 나서기로 했으나 최근 상황이 여의치 못해 무기 연기한 상태다. ◆전자=1·4분기 내수판매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줄어들면서 쌓이는 재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1∼3월 예약판매율이 전년의 절반에 그친 에어컨의 경우 특히 두드러져 적정재고수준을 위협하고 있다. 휴대전화와 주요 가전제품도 최고급 기종 및 신제품을 제외하고는 판매가 줄어들면서 업체들이 생산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도 대부분 업체의 재고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2백56메가 DDR D램의 경우 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은 통상 3∼4주분의 물량은 안고 가고 있으나 최근 1주일 생산분 이상이 추가로 쌓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D램값이 최근 소폭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개당 2달러선으로 떨어질 경우 감산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기타=중소업체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특히 재고가 심각한 업종은 △플라스틱 생활용품(소비위축 때문) △금형(전자업종 경기하락 및 수출부진) △기계부품(설비투자 급감 여파) △전자부품(수출 급감여파) △건자재(공장 신증설 위축) 등이다. 시화공단의 기계부품업체인 H철강의 경우 공장마당에 재고품이 수북이 쌓여있다. 생산설비투자 위축으로 주문했던 부품조차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3개월분 재고를 창고에 다 넣을 수 없어 회사 뜰에 쌓아놓고 비닐로 덮어둔 상태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재고누증으로 전국적으로 약 1천3백개 제조업체가 휴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지난 2월중 중소기업 평균가동률이 44개월 만의 최저치인 69.9%를 기록했으며 국내외 경기불안이 가속되면서 그 수치는 3월 이후 더 낮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업계는 이같은 재고누적과 경기침체에 따른 영향을 완화하려면 정부 및 공공기관의 구매예산 중 적어도 70%를 상반기 중에 발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해 긴급 경영안정자금도 대출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치구 전문기자·정태웅 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