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 여기 저기 푸르름이 완연하다. 이름조차 없는 들풀들이 저마다 봄날의 향연을 벌이는 듯 하다. 누구하나 돌보아 주는 이 없는데도 갖가지 야생초들은 봄이면 어김없이 언 땅을 뚫고 올라와 그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저 오가며 잡초려니 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풀들이 올해는 무척이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13년 동안 양심수 생활을 했던 황대권씨가 쓴 '야생초 편지'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복역 중 만성 기관지염을 고치려고 풀을 뜯어 먹다가 야생초에 눈을 뜨게 됐다. 황씨는 교도소 한쪽에 화단을 만들어 괭이밥 돌나물 방가지똥 땅빈대 등 이름도 정겨운 토종 야생초를 길렀다. 단순히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제비꽃 씀바귀 질경이 등의 잎을 따서는 들풀모듬을 만들고 물김치를 담가 동료 수인들과 함께 즐겨 먹었고,야생초 천연잼을 만들기도 했다. 산국(山菊)과 쑥 등은 말려서 건강차로 마셨다. 그런데 황씨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엉뚱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들린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어떤 야생초가 몸에 좋은지, 소위 '야생초 건강법'에 쏠려 있어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라면, 그중에서도 건강에 관한 것이라면 무턱대고 달려드는 우리 사회의 '편집증'이 또 한번 도지는 것 같다. 또 야생초를 무조건 캐다가 정원에 옮겨심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다는데 이 풀들이 그 자라난 토양을 떠나면 이미 야생초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황씨가 '야생초 편지'에서 진정 말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명만큼이나 다른 모든 생명들이 소중하며,개개의 생명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고 서로 연관돼 하나의 커다란 생명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태계 안에서 인간과 야생초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야생초에만 탐닉할 때 또 다른 생명파괴가 일어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토종이 사라진 사회,토종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사회,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는…"이라고 탄식하는 그의 고백을 들으면,우리 주위의 들풀 하나 하나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