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5일 토요일 오후 3시. 휴무일인 이날 일직 근무중이던 하우리 직원들이 해킹으로 추정되는 공격으로 인해 인터넷이 불통되고 있다는 보고를 띄우기 시작했다. 인터넷 대란의 시작이었다. 한 시간 뒤인 오후 4시경에는 전 직원에게 비상소집령이 떨어졌다. 6시경 대부분의 직원들이 회사로 출근했다. 스키장에서,지방휴양지에서 휴일을 보내다 앞다퉈 회사로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인터넷 불통의 원인이 정부 발표대로 해커들의 사이버 테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기술진이 모여 상황을 파악해보니 달랐다. 해킹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서버에 과부하가 걸리게 만들어 인터넷을 마비시켰다는 해킹 공격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개발진은 정부 발표와는 다른 방향으로 문제점을 찾아 뛰었다. 신종 웜 바이러스를 찾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저녁 때가 되자 사고의 윤곽이 드러났다. 문제를 일으킨 바이러스의 샘플을 입수했고 분석결과 신종 웜 '슬래머'가 인터넷 대란의 주범임을 밝혀냈다. 이 때부터 웜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막는 일에 앞장 섰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언론사에 이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보낼 때도 팩스와 전화를 이용했다. 이와함께 웜을 치료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느라 회사는 온통 비상이 걸렸다. 일반적인 웜 바이러스와 달리 시스템 메모리에 상주하는 슬래머 웜을 잡기 위해서는 별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이 기술을 가진 협력업체 잉카인터넷과 밤샘작업에 들어갔다. 인터넷이 마비됐기 때문에 두 업체 개발자들은 한밤에 디스켓에 백신을 담아 승용차로 두 회사를 몇 차례씩 왕복해야만 했다. 백신 솔루션은 다음날 오전이 돼서야 겨우 완성됐다. 솔루션을 내놓자 당장 컴퓨터 시스템에 의존해 뉴스를 내보내야 하는 언론사를 비롯 정부기관 개인사용자 인터넷서비스업체 등으로부터 연락이 폭주했다. 다시 한번 하우리의 기술력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인터넷 대란은 하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네티즌에게 하우리를 국내 대표 백신브랜드의 하나로 각인시켰고 기업 신인도도 한층 높일 수 있었다. 권석철 사장은 이 모든 걸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99년의 CIH 바이러스,2001년의 님다 바이러스에 이어 올해의 인터넷대란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고 발생시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우리 직원들의 남다른 책임감이 이같은 성공을 일궈냈다고 평가한다. "단순히 회사를 위해서라면 직원들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저마다 가슴속 깊이 네티즌들을 사이버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권 사장은 "직원들과 무수히 밤을 지새며 함께 나눠 먹던 컵라면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