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파병동의안이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파병안을 의결한지 12일만에 파병안의 법적 처리 절차가 마무리됐다. 지난 12일간의 파병안 파동은 짧은기간에 정치.사회적으로 `달라진 세태'를 여실히 보여줬고 그 소용돌이속에서 변화상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수용과 거부, 긍정과 부정, 적응과 부적응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났다. 파병안은 지난 21일 국무회의 의결과 국회 국방위 의결 및 같은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국회 및 여야지도부간 청와대 회동까지만해도 국회 처리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적기파병'을 위한 조기파병과 파병규모 확대 주문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 이후 반전 여론이 일면서 파병 반대론이 급속히 확산됨에 따라 국회의 파병동의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는 등 진통을 거듭해 16대 대선 후 "세상이 변했다"는 점을 실감한 정치권에 다시한번 충격파를 몰고왔다. ▲반전여론과 인터넷 = 남북분단이라는 조건속에서 국제사회의 규범적 여론에 둔감해 반전여론의 `불모지'로 불렸던 국내여론이 이라크전 발발과 파병안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세계화'됐다. 이에는 한국이 전세계적 반전여론 확산의 매개였던 인터넷 강국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동맹관계를 돈독히 하는게 국익"이라며 파병을 결정했으나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확산되면서 과거와 달리 국민여론은 이에 호응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여론형성 주도권의 손바꿈 현상에 주목하는 분석도 나온다. ▲국익.명분논쟁과 인식차 = 파병안 파동과정에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대와 50-60대간 찬반분포가 뚜렷하게 차이가 남으로써 지난 대선과정에서 드러났던 세대간 인식차이를 재확인했다. 반전여론은 특히 파병이 미국의 대 이라크전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한미관계에 대한 인식차이와도 직결되는 경향을 보였다. 비교적 나이 든 층은 분단상황에서 전통적인 한미동맹관계를 중시, 파병을 통해 한미간 신뢰관계를 공고히 해야 하며 그것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 데 비해 젊은 세대는 `대등한 한미관계'와 보편적인 인류가치를 중시했다. 이른바 `실리(국익)'와 `명분' 논쟁이지만, 파병 반대측에선 반전이야말로 앞으로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을 막는 국제여론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실리라고 반박했고 거꾸로 파병 찬성측에선 국민의 생존과 한반도 전쟁방지 이상의 `명분'이 있느냐고 맞섰으며 이같은 견해차는 `반전.반미' 논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서구사회에서 지난 60년대 성행한 반전운동과 비교해 이념성향의 변화 여부도 주목을 끌었으나 청소년층에까지 확산된 반전여론에 대해 일각에선 `또하나의 유행'이라는 시각도 제기됐다. 그러나 남북분단의 냉전적 사고틀에 갇혀 있던 국민 의식이 그간의 남북화해.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에 눈뜨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낙선운동 논란 = 파병안에 찬성하는 의원들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낙선운동방침에 대해 기성 정치권의 `반민주적 불법행위'라는 반발과 `정당한 유권자 의사표현'이라는 반박이 충돌했다. 그러나 낙선운동에 대한 수용여부는 결국 유권자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낙선운동 `위협'과 `협박'은 선거시장의 힘에 맡기면 되지 사전에 불법여부를 판단해 금지.허용할 것은 아니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와 관련, 최근엔 파병찬성 단체측에서 파병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 방침을 밝히고 나섬으로써 자연적으로 균형을 찾는 양상이다. ▲정치권 영향 = 파병안 파동 과정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모두 지도부의 `권고적 찬성' 당론마저 소속의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 진통을 겪었다. 이는 3김 이후 여야 정치권이 외쳐온 1인 보스 정당의 해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내년 총선을 의식해 유권자의 눈치를 본결과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이러한 사례가 축적돼가면서 의원에 대한 정당의 구속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반면 의원들의 개별적인 헌법기관으로서 활동폭 확대와 원내 정당화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집권여당인 민주당, 그중에서 노 대통령과 가까운 신주류 의원 상당수가 반전.반파병을 주도한 사실은 당정분리의 중요한 사례가 되기도 했다. 특히 이번 반전.반파병 파동을 둘러싼 여야 의원들의 소속정당 경계선을 넘나든 찬반 움직임과, 특히 반전의원 모임은 앞으로 예상되는 이념중심의 정계개편의 단초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통령 리더십 = 노 대통령은 파병안 파동과정에서 반대층으로부터 "파병도 옳고 반대도 옳다"는 이중처신을 한다고, 지지층으로부터는 "노무현 자주외교의 원칙을 저버렸다"고 각각 협공을 받았다. 이는 거꾸로 반대파에게 노 대통령이 `무모한 자주외교' 주장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심어준 측면도 크지만 파병안 처리가 계속 지연됐거나 부결 또는 수정통과됐을 경우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뻔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심각한 국론분열속에서 국정연설을 통해 파병의 당위성을 호소함으로써 국회 통과를 관철하는 등 파병문제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야대(野大)' 국회를 상대로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한편 이번 파동을 계기로 이라크전 발발이 임박한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 국방위가 파병문제에 대한 국민여론을 먼저 수렴해보는 노력을 등한시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전승현 민영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