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이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 마자 대형 뉴스가 터졌다. 대우자동차를 인수키로 했던 미국 포드사가 인수포기 방침을 발표한 것.눈길을 끈 것은 당시 미국 언론들의 태도였다. 포드는 그때 대규모 타이어 리콜 사태로 회사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언론들은 '대우자동차의 부실이 예상보다 너무 크다'는 것에서 포드의 인수포기 원인을 찾았다. 리콜사태가 가져다 준 포드의 경영난을 대우차 인수포기와 연결시킨 보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한 마디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지만,'순진한 기대'였음이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1년여 뒤 GM은 포드가 제시한 가격의 10분의 1도 안되는 가격에 대우차를 인수했다. 협상과정에서 GM은 대우차 부실에 대한 '월가'의 우려를 앞세워 가격을 깎고 또 깎았다고 협상 관계자는 전했다. 그때 가서야 기자는 월가의 후광을 업고 있는 미국 언론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갑자기 몇 년전 일이 생각난 것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가 보여준 언론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은 집중된 권력을 갖고 있다. 통제되지 않은 권력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국정홍보처는 기자들의 정부부처 집무실 방문취재 금지를 골자로 하는 언론관계 지침을 내려보냈다. 이런 인식이 형성된 과정에는 물론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시각에는 '국익'이라는 개념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언론이 자국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민주주의'란 가치를 내세워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언론정책은 국익에 대한 검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언론과 공직사회의 언로(言路)를 차단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언론도 시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문사들의 사세는 몇 년을 주기로 변화한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노 대통령은 이해하고 있을까.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