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4일 국무회의를 열고 특검법을 원안대로 공포함에 따라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파문 사건이 특별검사의 수사로 진상이 밝혀지게 됐다. 지난달 26일 국회를 통과한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은 ▲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대출금 2억달러가 정상회담 뒷거래에 사용된 의혹 ▲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주도의 5억5천만달러 송금 의혹 ▲ 현대전자 스코틀랜드공장 매각대금 등 1억5천만달러 송금 의혹을 수사대상으로 하고 있다. 특별검사는 이 수사에서 `산업은행의 현대상선에 대한 4천억원 대출과정에서 외압은 없었나' `7대 대북사업 독점을 위한 대금이 5억달러에 그쳤나' `나머지 3억달러는 어떻게 송금됐나' `국정원은 어떻게 환전편의를 제공했나. 또 김대중(金大中)전 대통령은 환전편의 제공을 몰랐나' `5억달러가 순수 경협자금인가' 등의 의혹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 산은 4천억원 대출외압 없었나 =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이 자금난을 겪던 2000년 5월18일 현대상선에 1천억원을 대출해주고도 6월5일 4천억원의 대출신청을 받고 이틀만인 7일 이 것 또한 대출해 주었다. 이와 관련 감사원 감사결과, 산업은행이 여신심사나 대출서류 작성 등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출해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의혹속에서 임동원(林東源) 전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는 지난 14일 대북송금문제와 관련한 대국민 해명에서 "국가정보원장 재직시인 2000년 6월5일께 현대측에서 급히 환전편의 제공을 요청해왔다는 보고를 받고 관련부서에 편의 제공이가능한 지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이 대출을 신청한 날짜와 임 특보가 환전편의 제공을 받았다는 날짜가 겹친다. 현대상선이 대출을 받기도 전에 또 대출심사 과정도 아닌 대출신청일에 국정원에 `환전편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상선은 적어도 4천억원의 대출승인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또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의 주거래은행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출신청 이틀만에 4천억원이라는 거액에 대한 대출이 승인된 것은 정부 고위층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얘기다. ◇ 5억달러만 송금했나 = 임동원 전 특보가 밝힌 대북 송금액은 5억달러다. 이 돈은 현대가 북측으로부터 철도, 전력, 통신, 관광, 개성공단 등 7대 사업권을 독점하기 위한 대가라는 것. 그러나 5억달러로 북한의 사회간접시설 전반인 7대 사업의 30년 독점권을 따냈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재계 안팎에서는 "5억달러가 큰 돈이지만 7대사업 독점 대가로는 크게 부족한 금액"이라며 "정부의 해명대로 현대가 북한의 7대사업을 30년간 독점키로 했다면 이보다 더 많은 금액이 지급됐거나 지급 약속을 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 3억달러는 어떻게 송금됐나 = 임 특보는 "현대가 2000년 5월초 북측과 7대 사업독점권에 대해 잠정 합의하고 이 대가로 5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으며 국정원이 외환은행에서 환전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해 현대상선이 6월9일 2억달러를 북에 송금했다"고 시인한 바 있다. 그러나 나머지 3억달러에 대해서는 어떤 경로를 거쳐 북한에 전달됐는지 김 대통령과 임 특보 모두 언급하지 않았으며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도 5억달러를 북측에 송금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3억달러 송금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이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특검법 공포 기자회견에서 "특검법 수사범위는 자금조성 과정에 대해 수사하는 것이지 기업의 재정상태 일반에 대해 수사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혀, 적어도 대북송금 3억달러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환전편의' 어떻게 제공됐나, 그리고 대통령은 이를 몰랐나 = 임 특보는 "2000년 6월5일 현대측으로부터 환전편의 제공을 요청받고 관련부서에 검토지시를 내렸으나 당시는 남북정상회담 1주일 전으로 회담에 전념하고 있을 때여서 보고받지도 관심을 갖지도 못해 돈이 (북한으로) 갔는지도 몰랐다. 대통령께 보고하지도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대의 5억달러 대북송금이 실정법인 남북교류협력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임 특보가 2억달러에 대한 `환전편의' 제공 검토를 지시한 뒤 이를 챙기지 않았다는 설명은 선뜻 납득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특검 수사가 명쾌하게 전개되지 못할 경우, 수사대상이 임동원 전 대통령특보는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환전편의'가 어떻게 제공됐는 지도 관심이다. 이와 관련,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는 지난달 29일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긴급대출받은) 4천억원중 2천240억원을 대출받은 다음날 국정원 계좌를 통해 환전, 현대의 해외지사를 통해 북한에 송금했다"는 내용과 함께 "국정원은 현대에 송금편의를 제공했을 뿐 국정원 계좌를 통해송금하거나 환전한 것은 아니다"는 국정원 고위관계자의 해명을 보도한 바 있다. ◇ 5억달러, 6.15 정상회담과 연계되지 않았나 = 임 특보는 "북한측과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대가제공 문제를 협의한 바 없다. 현대측에 따르면 (5억달러는)경협사업 독점권에 대한 대가이며 남북정상회담 개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정몽헌 회장은 금강산 육로 시범관광후 귀환길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광범위한 대북 사업권 획득 뿐아니라 남북정상회담 성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5억달러를 북한에 송금했다"면서 "대북송금이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임 특보와 정 회장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특검의 수사결과가 가장 주목되는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