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방송작가 김수현씨는 국내 TV드라마에선 키스장면도 못내보낸다며 불편한 심기를 털어놨다. 성(性)에 관한 직설적 대사가 어림없었던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금기도 깨지는 법. 어느 순간 키스장면이 용인되더니 "잤니"라는 대사가 등장했다. 92년 발표된 '즐거운 사라'(마광수)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99년에 나온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서갑숙)는 무죄였다. 90년대 말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성담론 바람은 대중가요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70년대의 '한번쯤 돌아보겠지,언제쯤일까'(한번쯤)에서 80년대 말까지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흘린 적 없나요/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알고 싶어요)라던 노랫말은 근래 '난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니예요/그댈 기다리며 나 이제 눈을 감아요/그대여 나 허락 할래요'(성인식) 식의 노골적 표현으로 변했다. '성인식'을 부른 박지윤의 신곡 '할 줄 알어'(박진영 작사ㆍ곡)가 지나치게 선정적인 가사(할줄 알어 할수 있어/내가 소리를 지르게 만들 수 있어…)로 인해 공중파TV 3사의 방송 불가 판정에 이어 영상물등급위의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이 노래에 대한 의견은 구구하다. 인터넷엔 "야하다는 건 어른들 기준일 뿐"이라는 글과 "혼자라면 들을 수 있겠지만 가족이 있으면 부담스럽겠다. 너무 상업적이다"가 함께 올라와 있다. 문화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는 물론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청소년이 주수요층인 가요의 노랫말을 꼭 이렇게까지 만들어야 하는 건지는 알기 어렵다. 혹시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아도 상관없고 화제가 되면 음반 판매에 더 유리하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라는 의구심 또한 배제하기 힘들다. 지난해 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가사로 영상물등급위에서 같은 판정을 받은 싸이의 앨범 '싸이2'가 20여만장이나 팔렸다는 것도 그런 의혹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가사만 놓고 봐서 그렇지 곡을 들으면 괜찮다'는 주장과 달리 외국곡의 표절시비까지 일고 있는 건 더더욱 씁쓸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