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용카드 대책을 내놓을 때 항상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직불카드 활성화' 방안이다. 직불카드가 활성화되면 연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작년말 현재 직불카드 가맹점수는 25만개. 신용카드 가맹점수의 14%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직불카드 사용액은 7백24억원에 그쳤다. 그런데도 정부는 소득공제율만 높이면 직불카드사용이 활성화될 것으로 믿고 있다. 과도한 규제는 풀어야 지난달 26일 국민 비씨 외환 우리카드 4사 노동조합위원장은 긴급회의를 가졌다. '신용카드사 구조조정 저지 및 생존권 사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회의였다. 카드사의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노조가 정부에 비상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었다. 비대위 관계자는 "신용카드업 관련 규제조치가 지난 2001년 2월이후 23차례나 남발됐다"며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때문에 지난달 모든 카드사들이 적자를 낼 정도로 시장환경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작년 4월 카드사의 대출서비스 비중을 제한한 것을 시발로 대손충당금 적립비중을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6월 7월 10월), 신용카드사에 대한 적기시정조치 기준을 강화(11월)했다. 카드업에 대한 그동안의 '관리소홀'을 일시에 만회하려는 듯 규제내용은 강력하고 직접적이었다. 금융당국의 기습적인 규제에 카드사들은 자산건전성 향상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우회책'을 찾았다. 대표적인 예는 '50 대 50 룰'이다. 정부는 카드사들이 신용판매(일시불+할부)와 대출서비스(현금서비스+카드론)의 비중을 동일하게 맞추도록 지도했다. 과다한 현금서비스 영업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대해 카드사들은 돈 되는 대출서비스 영업을 축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용판매 영업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맞섰다. 하지만 신용판매액을 무리하게 늘리려다 보니 카드사들은 각종 역마진 사업(가맹점 수수료 받지 않기, 무이자 할부영업 확대)에 손을 댔다. 영업수지가 더욱 악화됐음은 물론이다. 설상가상으로 현금서비스 연체율까지 늘어나 적자폭은 커졌다. '50 대 50 룰'의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한 정부의 규제정책과 카드사의 '무리수'가 어우러져 카드산업은 적자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가격 규제에 대한 카드사들의 불만도 높다. '현금서비스 이자율 인하'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카드사들은 3.7%포인트(업계 평균)에 이르는 이자율 인하를 단행했다. "현금서비스이자율이 너무 높아 여론이 좋지 않으니 알아서 내리라"는 정부의 압력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카드업계 관계자는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금융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가격결정도 카드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효율적인 경영전략을 세우겠느냐"고 반문했다. 소비자, 카드사도 변해야 요즘 카드사들은 속칭 '양심불량' 회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카드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재산을 친척 명의로 돌려놓거나 주소를 자주 이전하는 등의 수법으로 카드사의 채무 변제 독촉을 교묘히 피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채권추심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카드사별로 양심불량 회원이 수천명씩 양산됐다"며 "모럴 해저드를 막고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채권추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쓰러져가는 카드산업을 다시 살릴수 있는 주체는 역시 카드사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위기의 카드업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첫 단계는 카드사들 스스로 과당경쟁을 지양하는 것"이라며 "이와 함께 증자 채권발행 등을 통해 자금확보는 물론이고 단기 ABS를 중장기 채권으로 전환, 자산건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