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75년 창업후 1백년을 훨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시마즈제작소의 '기술 최우선' 전통은 창업자인 시마즈 겐소의 가문 내력 및 시대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불교 용품 판매상 출신의 시마즈 겐소는 개화기였던 당시, 과학입국의 뜻을 품고 각종 교육용 기자재 사업에 뛰어들었던 파이어니어였다. 발명가 자질이 뛰어났던 그는 일본 근대화를 위해 교토부가 초청한 독일인 와그너 박사의 지도 아래 증류기, 배기기 등 이화학 교재를 잇달아 개발하는 등 1백10여가지 제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의료기, 정밀 계측기기 분야에서 일본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현 시마즈제작소 탄생에 터를 닦은 것은 그의 아들인 겐소 2세였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겐소 2세는 교토대학과 손잡고 1896년 일본 최초의 교육용 X선 촬영장치 개발에 성공했다. 1909년에는 역시 일본 최초로 의료용 렌트겐장치를 제품화했으며 축전지 등 시대를 앞서가는 제품을 연이어 발명, '일본의 에디슨'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기술개발 경쟁에서 최일선을 달리는 시마즈제작소의 전통이 싹트게 된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교토라는 지역적 특성을 꼽을 수 있다. 메이지유신 후 수도를 도쿄에 넘겨주면서 일어난 교토부와 시민, 학교의 울분과 반발이 '기술에서만은 질 수 없다'는 오기로 이어지면서 산.관.학 협력의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시마즈제작소는 교토부가 1880년대 후반 연간 예산의 2배가 넘는 1백25조엔의 거금을 쏟아부으면서 밀어붙인 일본 최초 발전소건설과 전력 보급 등 인프라 사업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