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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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웅'(감독 장이머우)엔 주인공 무명(이연걸)의 칼바람 몇번에 서고(書庫)의 죽간(竹簡·대나무책)이 몽땅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파검(양조위)과 비설(장만옥)에게 검술실력을 과시하려 대나무를 이은 가죽끈을 몽땅 잘랐던 것이다.
진시황(BC 259∼210년)은 매일 아침 각종 보고와 자료가 담긴 60㎏의 죽간을 검토했다고 한다.
종이가 없었던 탓이다.
종이가 나온 건 이로부터 3백여년 뒤인 AD 105년.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 제지기술을 발명한 뒤 중국에선 널리 쓰여 7세기 초 이미 장안의 도서관에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돼 있었다고 할 정도지만 유럽엔 8세기 중반에야 전해졌다. 그나마 책이 널리 보급된 건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발명 이후였다.
종이의 용도는 실로 다양하다. 책과 신문은 물론 지폐 사진 복권 영수증에 이르기까지 온갖 곳에 쓰이는 만큼 종이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 확산에 따라 전자결재 전자편지 전자책이 생겨나면서 종이의 역할은 크게 축소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종이 생산량은 세계적으로 매년 3%씩 꾸준히 증가한다고 한다.
컴퓨터 프린터 복사기 등 정보기기 보급 및 인터넷과 e메일 활성화에 따라 정보량이 폭증한 결과 종이없는 사무실로 변하기는커녕 종이천국 사무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의 종이 생산량은 2001년보다 5% 증가한 9백81만2천톤으로 세계 8위이고,소비 또한 전년보다 4.2% 늘어난 7백34만여톤에 달했다.
책을 만드는데 쓰는 중질지는 줄어들었지만 복사지가 크게 늘고 아트지와 포장용지 판매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 생산은 사상 처음 1천만톤을 넘을 것이라는 소식이다.
전국민이 하루에 A4용지 한장만 덜 쓰면 30년이상 자란 나무 4천5백그루를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종이 생산 1천만톤 시대를 맞아 불필요한 프린트,지나친 장식이나 과대 포장, 안쓰고 버리는 수첩과 공책 때문에 아까운 종이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총점검해야 할 듯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