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不感 .. 조명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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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숙 < jms5244@hanmail.net 소설가 >
대구에서 지하철 방화사건이 나던 날,바깥에서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서는 매스컴에 눈과 귀를 내맡기고 앉았다.
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안부를 확인하고,그 지하철에 탔던 아이들의 엄마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몇 번 채널을 돌렸으며,저 엄청난 일의 뒷감당은 어떻게 하지 하는 근심에다 보태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과하는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구나 하는 거대한 공포까지 합쳐지자 그만 안절부절못했다.
그런데도 방화한 사람에게 왜 그랬느냐고 다그치고,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 얻은 게 뭐냐고 삿대질을 하고 싶은 악다구니가 어느 사이 슬그머니 꺾이고 있었다.
나는 불감(不感)일까?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찾아온 가난의 시대를 어서 지나가려고 허겁지겁 달려온 지금의 우리는 모두 불감일까? 어떤 변명으로도 많은 인명을 상하게 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겠지만 당당하게 나무라기에는 부끄러운 구석이 너무 많다.
불감인 이상 내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
사회의 약자나 소외계층이 안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은 내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엉뚱한 일을 저지르면 정신질환자로 몰아붙이면 그만이다.
그래 그렇다.
소외되면 저만 손해다.
소외되지 않으려면 기를 쓰고 불감해야 한다.
저건 남의 일,이건 내 일 명확하게 구분지어놓고 되도록이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그래야 내가 편하다.
하지만 불특정다수를 겨냥하는 사회적 범죄의 표적은 불감인 나,불감인 우리다.
오늘은 무사히 피했으나 언제 어디서든 내가 표적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표적이다.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근본 원인을 찾아내 치료하지 않으면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병리현상은 확산될 것이고 그 피해자는 결국 나,우리가 된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불감이어서 지하철을 탔다.
흘끔흘끔 전동차 안을 살피면서,혹시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살 구멍부터 찾을 요량으로 평소 무심히 보던 비상구의 수동 코크 위치까지 살피는 파렴치한 속내를 서로 들키지 않으려는 우리 모두는 여전히 불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