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지역의 '전운(戰雲)'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안보리에 제출된 한스 블릭스 유엔무기사찰단장의 2차보고서가 미국의 이라크공격 명분을 크게 약화시킨데 이어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도 무기사찰 연장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진 사상최대 규모의 '이라크전쟁 반대시위'도 공격을 서두르고 있는 미국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주도의 이라크공격이 당초 예상보다 상당히 지연되거나,전쟁자체를 피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전쟁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전세계적으로 사상최대 규모의 반전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니 메이모 백악관대변인은 15일 "조지 W 부시대통령은 무력을 최후수단으로 여기고 있으며,아직도 이라크와의 전쟁을 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부시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강력한 옹호자이며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민주적인 가치중 하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모여 자기 의견을 표명할 수있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메이모 대변인의 이날 성명은 그동안 강경일변도에서 한발짝 후퇴한 것으로 사찰연장을 수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도 이날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위성채널과 가진 회견에서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전쟁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 평화중재노력 가속화=교황 요한 바오르 2세 특사자격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로제 에체가라이 추기경은 15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2시간 동안 회담을 갖고 "전쟁을 막기위한 노력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랍연맹 외무장관들은 이날 범아랍권차원에서 이라크위기 해법을 찾기위해 오는 22일부터 이집트에서 '아랍특별정상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전날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은 "속수무책으로 전쟁을 기다라고 있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아랍권 정상회의를 전격 제의했다. 이와 관련,아랍어 일간지 알 이티하드는 "아랍국가들이 후세인 대통령을 설득해 중동의 한 국가로 망명시키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찰연장 기간이 훨씬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날 CNN방송에 출연,"이라크의 협력정도가 현 수준에 그칠 경우 사찰 완료에는 6개월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고,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사찰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세계 사상최대 반전시위=거세지는 반전시위도 미국의 '전쟁의욕'을 꺾고 있다. 지난 주말 유럽 미주 중동 아시아 등 전세계 수십개 국가에서는 1천여만명이 이라크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반전깃발은 특히 유럽에서 더욱 거세게 휘날렸다. 런던시내에서는 영국 사상 최대규모인 1백50여만명이 시위에 참가했고,독일 베를린 집회에도 2차대전후 가장 많은 50여만명이 반전·평화 구호를 외쳤다. 전문가들은 유엔사찰단이 이라크가 유엔결의를 위반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함에 따라 '전쟁반대'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