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대에 물리학 강좌가 개설된 것은 지난 1868년. 그 5년후인 1873년 캐빈디시 연구소는 물리학과 부속연구소로 출발했다. 설립 자금을 기부한 실험물리학자인 핸리 캐빈디시(Henry Cavendish)의 이름에서 따왔다. 캐빈디시 연구소는 근대 물리학의 발전에 앞장서 왔다. 20세기 초반 세계 물리학계를 깜짝 놀라게한 굵직굵직한 연구실적들을 쏟아냈다. 1897년 전자(electron)를 처음으로 발견해 물리학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J J 톰슨을 비롯 원자핵을 발견한 어네스트 러더퍼드, 중성자를 처음으로 밝혀낸 제임스 채드윅, 은하계의 펄서(주기적인 전파를 발사하는 중성자별)를 발견한 휴이시와 벨 등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50년전 크릭과 왓슨이 X선을 이용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규명해낸 곳도 바로 이 연구소다. 현재 학생 4백명, 교수진 등 교직원 2백99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천체물리학 반도체물리학 저온물리학 등 11개 그룹으로 나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는 세계적 기업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캐빈디시 연구소는 최근 천체물리학 고에너지물리학 고체물리학 등 세 분야를 중점적으로 지원 육성하고 있다. 연구소 옆에 있는 예배당에 들어서면 정면의 한쪽 면을 빼곡하게 채운 1백여명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금박으로 새겨진 이들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사망한 캐빈디시 연구소 학생과 연구원들이다. 성이 같은 형제도 여럿 있다. 나라를 위해 참전했다가 대가 끊긴 집안도 수두룩하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캐빈디시 연구소는 연구원들에게 학문적인 업적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봉사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의 하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지도층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