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동대문시장과 밀라노 .. 마크 클라크 <사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mark.clark@kor.ccamatil.com
한국을 다녀간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다.
정장을 준비하지 않고 왔는데 갑자기 필요해 기성복 매장에서 맞는 옷을 찾아봤다.
그러나 서양인의 체구에 맞는 옷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그때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 동대문시장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이 기억났다고 한다.
맞춤양복을 기성복 가격으로 맞출 수 있는 곳이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영어를 하는 사람을 바꿔줬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당장 호텔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호텔에 통역을 데리고 나타난 양복점 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치수를 재고는 이른 아침에 가봉을 하러 왔더라는 것.
가봉을 마친 뒤 완벽하게 다림질된 옷을 받은 것은 정오 경.
양복을 입고 행사에 나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가격이었다.
기성복 한 벌 사 입는 값보다 쌌으니 말이다.
동대문 시장과 남대문 시장은 한국 패션산업의 상징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높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을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동대문 시장의 상인 중 질병으로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수면부족과 24시간 근무체제에 따르는 생체리듬 파괴,열악한 근무환경 등으로 소화기 질환과 알레르기는 기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한국의 패션산업이 엄청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실력있는 디자이너를 고용해 젊은층의 구미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하고,생산과정을 전문화하고 분업해 국내시장에서는 겨우 경쟁력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경쟁력을 갖출 만한 디자인력도,생산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근면'의 경쟁력은 중국에 빼앗겨가고 있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면 한국의 패션 산업과 비교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중소기업 중심으로 패션이 발전해 가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들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아마 그들의 탁월한 색상감각과 디자인 개발능력이 원천일 것이다.
그들은 각각 디자인을 개발하지 않는다.
업종별 협회가 잘 조직돼 있어서 공동으로 디자인을 개발하고 마케팅한다.
그리고 지방 정부에서는 이러한 업계의 자구적인 활동을 적극 지원해 주고 있다.
21세기 패션의 원천 경쟁력은 디자인에서 나온다.
그러나 영세 기업들이 단독으로 개발할 수 없다.
디자인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