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산업은행 대출금 4천억원 가운데 2천240억원이 북한에 보내진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4개월여동안 논란을 빚은 현대의 북한 지원설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대북 지원 논란은 작년 9월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금강산 관광사업 대가로 현대가 북한에 4억달러를 제공하고 비밀리에 4억달러를 추가 제공했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한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엄 의원은 '2000년 6월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천억원을 긴급 운영자금으로 지원했지만 3개월내 일시불 상환 조건이었던 지원 자금 중 1천700억원만 상환되고 나머지는 아직 남아있다'며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이 이 자금은 현대아산이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폭로했었다. 국감에서 제기된 대북 지원설은 청와대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까지 더해져 일파만파로 퍼졌고 정치권과 현대, 산업은행을 '대북 커넥션'의 태풍 속으로 밀어넣었다. 현대상선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기업어음 상환, 선박 용선 등 운전자금으로 이 돈을 썼다고 주장했지만 4개월여동안 감사원 감사나 사정 당국의 조사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현대측의 명확한 해명이 없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4천억원이 계열사 편법 지원에 사용됐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힘을 얻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당좌대출이 누락된 현대상선의 2000년 반기 사업보고서, 김충식 당시 사장의 서명이 빠진 대출서류 등 대출 과정의 문제점도 속속 불거져나왔다. 그럼에도 당시 외자유치 목적으로 미국에 머물던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천억원 대출 사실만 알고 있었으며 어떤 용도로 썼는지는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또 신병 치료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충식 전 사장도 언론과 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이 문제에 대해 굳게 입을 닫아 의혹 규명을 어렵게 만들었다. 금융당국이 이 돈에 대해 '계좌추적불가'라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대선을 거치면서 대북지원설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정 회장이 지난 11일 전격 귀국한데 이어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가 15일 "4천억원 지원설 등 DJ 정권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현 정부가 털고 가야 한다"고 말함에 따라 대북 지원설 의혹 규명은 다시 급물살을 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18일 대북지원설 등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의 소신있는 수사를 주문했고, 검찰은 23일 정몽헌 회장 등 관계자들에 대해 전격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지난해 11월부터 감사원의 자료제출 요구를 세 차례나 연기했던 현대상선은 감사원이 검찰에 고발하기 하루 전인 23일 밤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했다. 감사원은 28일 자료를 제출받아 사흘동안 검토하면서 4천억원 가운데 2천240억원이 북한에 송금됐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기자 gc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