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설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나마 서로 위로받던 동료들도 강제 출국 단속을 피해 하나둘 떠나가니…명절 돌아오는 게 그저 겁날 따름이에요." 서울 구로동 '중국동포의 집'에서 만난 지린성 출신 두영걸씨(50).올해로 4년째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중화문화권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설)'을 맞는 감회를 이렇게 털어놨다. 오는 3월까지 3년 이상 국내에 머무른 불법체류자들은 모두 강제 출국시키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에 "설마 다 내보내기야 하려고"라며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그것도 잠시.길을 가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은 불안감만은 떨쳐버릴 수 없다. 작년 12월 일하던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잘려나간 두 손가락은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일본에 유학 중인 아들이 설 연휴 때 한국에 잠깐 들르겠다는 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오게 했어요. 4년 만에 보는 자식놈한테 손가락 없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요." 가족들에게만은 초라한 도망자의 모습보다 중국을 떠나올 당시의 말끔한 구청 공무원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는 중국동포 수는 중국 현지 전체 2백만명의 10% 가량인 20여만명.이 중 90%가 1천만∼1천5백만원(중국 현지 소형 아파트 값)의 거금을 들여 목숨을 걸고 밀입국하거나 위장입국한 불법체류자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해 외국인 불법체류 자진신고자 25만6천여명 중 3년 미만 체류자 10만7천명(1년 출국 유예)을 제외하고는 예외없이 오는 3월까지 출국시킨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강제 출국 대상자인 중국동포들의 체류기간을 1년 연장해 달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대해서도 "불법체류자가 더욱 급증하고 산업연수생 등 합법체류자와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빌린 원금보다 몇 곱절 늘어버린 이자를 갚기에도 급급한 중국동포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단속에 걸려 빚도 못 갚고 강제 출국당한다고 칩시다. 집으로 간다고요? 절대 못가요. 사채업자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혼자 죽으면 죽었지 가족들까지 빚잔치에 끌어들일 수 있겠습니까."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 간암 선고를 받아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진 신종민씨(44·중국 헤이룽장)는 '중국동포 전체를 칼도마 위에 몰아세우고 있는 처사'라고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중국 선양에서 온 음정자씨(53·여)는 "한국 사람들 싫어하는 업종에서 일하면서 빚이나 갚고 돈 몇푼 쥐고 고향에 돌아갈 수 있도록 1년만이라도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김해성 중국동포교회 목사는 "인수위의 고용허가제 도입 방침 이후 해당 부처들이 중국동포를 비롯한 외국인 근로자 대책 마련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국동포들의 불법체류를 양성화하고 하루 빨리 고용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