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가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지난 23∼26일 프랑스 남부의 보르도 인근 앙굴렘에서 열린 제30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을 통해서다. 인구 10만명의 소도시 앙굴렘의 중심가인 생 마르셸 광장에 마련된 1백여평의 한국만화 특별전시관에는 나흘 동안 무려 8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한꺼번에 수천명씩 몰려드는 바람에 가건물로 지은 전시관이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했을 정도다. 한국 만화를 번역해 출판하겠다는 제의도 잇달아 '아시아 만화는 곧 일본의 만화'라는 인식을 깨뜨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수확은 일본 만화의 아류라는 인식을 깨고 한국 만화의 독자성을 인정받은 점.한국 만화의 역사를 개괄한 '한국만화 역사전-한국만화의 흐름',한국의 젊은 만화가들을 집중 소개하는 '오늘의 만화-19인의 작가들' 등이 모두 만화 전문가와 관람객들로부터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한국의 창'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취향과 표현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리베라시옹을 비롯한 외국 언론들은 특히 한국의 연간 만화출간 종수(9천종)가 프랑스(2천종)의 다섯배에 이르고 만화 작가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또 일본 만화를 번역해 유럽에 소개해온 피카 에디시옹 출판사의 편집자 뱅상 주주코프스키(32)는 "한국 만화는 전반적으로 매우 생생하고 역동적이며 해학적이어서 흥미롭다"며 "한국 만화가 유럽에 확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양경일씨의 '신 암행어사' 등 두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비디오게임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시스 스피테리(21)는 "한국 만화는 일본에 비해 폭력적이지 않고 일상을 많이 다루고 있어 친근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특히 IT(정보기술) 강국의 특장을 살린 '모바일·인터넷 만화전'은 콘텐츠와 기술이 성공적으로 결합한 사례로 꼽혔다. 전시회를 보러온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휴대전화 속의 만화를 보며 신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차례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다. 현지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한국 업체와의 모바일·인터넷 만화사업을 잇달아 제의했다고 행사를 주관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KOCCA) 관계자는 전했다. 한국 만화를 번역 출간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작가 권가야 이애린씨는 행사기간 중 2,3곳의 출판사로부터 작품의 번역 출간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앙굴렘의 주요 만화출판사가 앞으로 한국 만화를 본격적으로 출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최영호 KOCCA 산업지원본부장이 전했다. 한국 만화는 오는 5월 열리는 벨기에 만화페스티벌과 내년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만화올림피아드 참가 제의도 받은 상태다. 앙굴렘(프랑스)=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