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크전쟁 가능성이 국제유가 상승과 불확실성 증대로 이어져 세계경제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미국경제는 작년 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달러화 가치하락으로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경제도 가계대출 부실 이후 경기를 받쳐주던 수출이 대외여건의 악화로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의 활동에 대한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 인수위가 모든 정책의 결정권자 같은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수위내에서도 정책혼선이 빚어져 경제주체들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한다. 근본적으로 인수위는 정책집행기관이 아니다. 그러므로 주요 정책과제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발언'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남아 있는 활동기간으로 볼 때 인수위는 선거과정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밝힌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란 정책지침을 보다 구체화하고,'신성장'과 '참여복지'라는 새 정부 정책 지향점의 현실성을 높일 수 있는 과제를 준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아직 이 개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인수위를 비롯한 새 정부 정책담당자들은 이들 단어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고,이 두 개념이 상호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전문가들과 개방된 자세로 토론에 임할 필요가 있다. '서민대통령'으로 불리는 노 당선자의 지향점이 △시장질서를 해치는 비윤리적 경제행위에 대한 규제와 △서민층을 위한 공평한 분배라 하더라도 냉혹해지는 국제경쟁속에서 한국경제가 살아남기 위해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며,그것이 새 정부 정책지향점의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새 정부의 선거공약이기도 한 7%의 잠재성장률을 확보하기 위해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건설,과학기술·R&D투자 활성화 등을 강조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방안들은 경제의 잠재적 성장동력을 높이는 장기적 과제이지,단기간내에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참여복지를 위해 제기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 강화,비정규직 차별해소 등은 단기간내 상당한 규모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정책과제들로 이미 구조조정을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재정상태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것들이다. 따라서 '성장을 통한 분배의 달성'은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으며,새 정부 임기내에 수행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라고 보여진다. 더욱이 불확실성이 높은 대내외 경제여건하에서 대규모 재정적자를 초래할 분배중심적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우리경제의 안정성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 또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도입하고자 하는 집단소송제와 금융계열사 분리청구제 등도 애초 취지대로 재벌기업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극복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어야지,국민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재벌체제를 타파해야 한다는 식으로 밀어붙여서는 안될 것이다. 기업투명성은 높이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지만,투자를 억제하고 외국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간주될 수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의 규제들은 완화해 나가야 한다. 언제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개혁'이 화두가 됐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모든 것을 개혁하겠다고 출발한 정권들이 임기말에 가서 보면 성과는 별로 없었다.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선 다수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해 예측 가능한 가운데 과제들이 수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개혁은 경제주체를 불안하게 하는 구호로서의 개혁이 아니라,법·제도 같은 시스템의 효율적인 정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점진적 개혁임을 인식해야 한다. 물 흘러가 듯 자연스러운 개혁이야말로 소리는 요란하지 않지만 우리경제의 밝은 내일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hahyunjo@dreamwiz.com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