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박.한국에 있는 공장을 폭파시키고 오시오" "미스터 클라우쇼어.차라리 당신의 미국 공장을 폭발해 없애시오" 전쟁터나 건물 철거반들의 험악한 이야기가 아니다. 천연가스(CNG.Compressed natural gas) 저장용기 및 이동식 CNG충전차량 전문업체인 엔케이의 박윤소 대표(63)와 미국 CPI의 잭 클라우쇼어 대표가 나눈 대화 한토막이다. 두 대표는 지난 2001년 7월 미국 펜실베니아주 맥키스포트시에 있는 CPI 본사에서 대면했다. 이들이 자리를 함께 한 이유는 엔케이의 이동식 CNG 충전차량 때문. 엔케이가 새로운 제조공법으로 이동식 CNG 충전차량을 중국과 미국에 저렴하게 공급하자 CPI에 비상이 걸렸다. CPI는 이름도 모르는 한국의 조그만 기업이 세계 시장을 휘젓고 다니자 크게 당황했다. 시장을 거의 독점하던 CPI였기 때문이다. CPI는 엔케이와 대화를 요구했다. 박 대표와 마주한 CPI의 클라우쇼어 대표는 엔케이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며 공장을 없애면 그만큼 대가를 주겠다고 회유했다. 기술경쟁력 우위를 확신한 박 대표는 오히려 CPI를 없애버릴 것을 제안했다. 한치의 양보 없이 오가는 거침없는 대화 속에서 기업의 치열한 생존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선진공법을 바탕으로 엔케이는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던 CPI를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엔케이는 수출을 전쟁처럼 여긴다. 승리 아니면 패배로 확연히 갈리는 게 수출 전선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세계는 산업 전쟁터다.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술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엔케이는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수출 기초 다지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매출이 5백86억원인데도 1백억원을 연구개발 및 시설비에 투자했을 정도다. 이 모든 것이 수출 밑거름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초대형 CNG저장용기 부문에서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세계 2위인 범용 CNG 저장용기 부문은 2년 이내에 1위로 올라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부산 신평공단에 위치한 엔케이는 선박용 소화장치 전문업체로 출발했으며 초대형 이동식 충전차량 등도 생산한다. 중국이 일반 범용고압가스용기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자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재빨리 눈을 돌렸다. 선박용 소화장치의 핵심인 고압가스 용기 제작기술을 대용량 고압력 CNG 저장용기 개발에 응용해 세계에 우뚝 섰다. 엔케이는 미국 일본 중국 이란 동남아 등지에도 수출한다. 지난해 12월에는 이란에서 3년간 26만개(1억달러)의 천연가스 저장용기를 수주했다. 엔케이는 중동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이란 현지에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엔케이의 올해 예상매출액은 지난해보다 71% 늘어난 1천2억원. 이 가운데 수출이 60%를 넘는다. 박 대표는 "모험과 도전의 벤처정신이 세계 1등을 가능하게 한다"며 "기술의 뒷받침 없는 수출은 반짝할 뿐 오래가지 못한다"고 기술이 수출의 동력임을 재차 강조했다. (051)204-2211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