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인 도연명은 일찍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 중에서 계속적으로 정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는 세상 만물의 순환과 생명력을 지적한 것으로 판단된다. 도연명의 말처럼 '전혀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던' 북한 핵문제가 '생성단계'에서 '전환단계'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작년 10월 북한의 핵개발 시인으로 한반도의 가을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핵문제는 추운 겨울을 지나면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라는 만만치 않은 캐릭터들이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 조바심을 내며 관전한 지 석달이 지나면서 어두운 터널을 한걸음 한걸음 통과하고 있다. 아직은 추운 겨울이지만 들녘에 새로운 생명체들이 언 땅을 뚫고 나올 때 쯤이면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가 서서히 가닥을 잡아가게 될 것이다. 부시 대통령,콜린 파월 국무장관,토머스 허바드 주한미국 대사 등이 본격적으로 대북문제 해결의 '당근'을 언급하고 있다. 당근은 화력발전소 건설 등 단순 식량지원 '이상'의 것이 포함될 것이라고 친절하게 주석까지 달고 있다. 일부에서는 불가침조약은 의회의 반대와 전례가 없다는 외교적 설명과 함께 다른 형태의 문서 보장까지 언급하고 있다. 미국은 사태초기에 북한과는 핵무기가 폐기되기 전까지는 '대화도 협상도' 없다고 했다가 최근에는 '대화는 하되 협상은 없다'던 입장에서 진일보해 경제지원 의사를 밝힘으로써 '대화와 협상' 모두를 개시하겠다는 방침까지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지난 가을과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미국의 계산을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근을 제시해 북한을 유엔 안보리 등 다자간 국제협상의 무대로 유도함으로써 북한이 더 이상 핵 카드를 이용한 '벼랑끝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핵문제 해결 이후 보상방안을 관련국들과 공동으로 책임지도록 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다. 설사 북한측의 반발로 인해 다자간 합의를 통한 새로운 협정(New Arrangement)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미국으로서는 잃을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국제사회의 평화적 해결 시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일단 '다자간 해결방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이미 미국의 대화입장을 '국제여론을 오도하기 위한 하나의 기만극'으로 일축하고 있다. 특히 핵문제를 계기로 미국과 일괄타결을 시도하고 있는 북한은 핵문제를 '북·미간의 안건'으로 축소하려고 계속적인 강공책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포동Ⅱ 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다시 한번 벼랑끝 전술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안도 경우의 수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미국이 조성하는 대화국면을 깰 정도의 강수를 두기에는 북한의 입장이 여유가 없다. 따라서 어떻게 적당한 시기를 선택해 타협의 방안을 모색할 것인가가 보다 현실적이다. 결국 현재로선 양측이 '줄 것'과 '받을 것'이 분명해진 만큼 어떤 모양새를 갖추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시점과 절차를 만들어갈 것이냐가 핵문제 해결의 관건이 될 것이다. 2라운드에 들어선 현재 양측의 핵문제 해결 노력에 대한 가장 큰 이견은 협상형식을 '다자간'으로 할 것인지,'양자간'으로 할 것인지로 압축되고 있다. 어차피 협상이 본격화되면 북한은 핵무기 폐기 대가로 체제보장과 함께 최대한의 경제적 보상을 요구할 것이 예상되는 만큼 양측은 협상의 형식을 자기측에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그럴 듯한 시나리오는 러시아나 중국의 중재보다 미국의 뉴멕시코 주지사와 북한 유엔 대표부의 만남처럼 북·미간의 은밀한 협상이 성과를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화의 결핍으로 문제가 야기되었던 만큼 제3자의 중재보다는 북·미 직접 대화로,그것도 미국현지에서 이루어질 접촉이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kysung@empal.com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