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이네의 경우 ] 우리 주변에도 반듯한 경제교육을 시키는 가정이 적지 않다. 자녀에게 돈의 가치와 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비상한 교육열을 발휘하는 엄마 아빠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과보호하며 '시험 기계'로 키워가는 부모들과는 대조적이다. 손기원 인솔회계법인 대표(42)와 경영서적 전문출판사인 경영베스트의 이명순 대표(40) 부부는 그런 면에서 다른 부모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경제통' 부부의 경제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 정릉의 손기원씨 자택을 찾았다. ------------------------------------------------------------------- 손기원씨 가족은 며칠 전 '극기체험' 시상식을 가졌다. 아들인 이석군(11)은 이날 엄마의 도장이 찍혀 있는 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석이는 상보다 '극기체험'에서 당당하게 '생존'했다는 사실이 더 뿌듯했다. 가정에서 웬 극기훈련일까. 이 가정의 극기체험은 '하루 7천원의 용돈(일주일치 4만9천원)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것'이다. 일반적인 개념으론 아이들 1주일 용돈이 4만9천원이라면 너무 많은 것. 그러나 괜히 극기체험이라는 이름이 붙은게 아니다.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도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한끼 식사와 숙박료가 각각 2천원이다. 하루 평균 용돈이 7천원이므로 세끼식사와 잠자리만으로 벌써 하루 1천원씩 적자다. TV나 컴퓨터(1시간당 5백원)도 못할 처지다. 누나와 다투거나 숙제를 안하면 벌금까지 내야 한다. 수입(구두닦기 2백원, 설거지 5백원, 심부름 1회 1백원 등)을 올리려고 열심히 일을 하지만 하루 한끼 정도는 라면(1천5백원)으로 때워야 했다. 그래도 연이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일일 보고서를 작성하는 저녁시간. 이석이는 누나(손이진)의 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처럼 적자투성이였던 누나의 재정상태가 하루만에 몰라보게 개선된 것이다. 이석이는 수입.지출내역을 꼼꼼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간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누나에 비해 단위가 작은 수입활동에만 치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드디어 5일째 흑자로 돌아섰다. 7일째를 마쳤을 때는 결국 6천8백원의 돈을 남길 수 있었다. "아이들이 소득을 얻고 소비.지출하는 과정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이 이벤트를 기획했지요. 매일 회의와 평가를 통해 경제의 기본 개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극기체험의 심사위원인 아빠 손씨의 이야기다. 이석이 역시 "짜임새 있는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뿌듯해 한다. 물론 이 가정이 이 기간에만 경제교육을 하는 것은 아니다. 늘 생활속에서 경제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배워나가게 물꼬를 터준다. 쇼핑을 가서 직접 물건을 고르게 하고 신용카드 등 다양한 지불수단을 활용해 보도록 지도한다. 주말에는 '백운서당(손씨 아파트의 사랑방)'에서 토론이 벌어진다. 이번 주는 '세상에 공짜가 있는가'란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공짜 휴대폰, 공짜 사은품이 있잖아요."(이석이) "휴대폰을 공짜로 얻었다해도 장기간 사용해야 하지 않니. 그동안 전화요금에 휴대폰 값이 나누어 부과된다고 보면 맞단다. 사은품도 마찬가지지. 다른 상품 구매가격에 포함되거나 매출을 늘리는 수단이니까 공짜로 볼 수 없잖니."(엄마) "그럼 엄마, 아빠가 주시는 용돈은 공짜 아니예요?"(이진이) "가정에도 서로 공헌의 의무가 있단다. 각자의 역할을 찾아 그 역할을 해내고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것이지."(아빠) 손씨 부부는 경제교육이 경제지식을 쌓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수단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살면서 돈으로 살 수 없고 계량화할 수 없는 것들을 경시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진정한 경제교육이라는 설명이다. "부자가 되기보다는 능력에 맞게, 남을 배려할 줄 알며 살아가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많으면 좋긴 하지만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독이 되니까요." 손씨의 경제교육 원칙이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