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한 취지의 법령이나 정책이 부처별로 제정되거나 입안돼 기업이나 국민에게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부처마다 공사와 공단 협회 등 수십개 산하기관 및 기금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산하기관이나 기금을 운영하기 위해 부담금 출연금 과징금 등의 준조세를 징수하고 있는데 이러한 법정 준조세만 6백34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 부회장은 최근 한국행정학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기조강연을 통해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는 준조세가 곳곳에 퍼져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준조세를 줄여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부담금 숫자를 몇개 줄이는 정도로는 안된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각종 부담금 등을 따지기 전에 중복된 권한과 규제를 행사하는 정부관련 조직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준조세란 조세 외에 기업활동 과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각종 부담금과 부과금 분담금 기부금 기금출연금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비용을 말한다. 이같은 준조세는 눈에 보이지 않게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전자업체인 A사는 몇해 전 40만평 규모의 어느 지방산업단지 조성사업에 참여했다가 평당 13만원이면 될 것을 평당 16만원 이상 들여야 했다. 준조세 때문이다. 오.폐수 처리장 설치비로 50억원을 물어야 했고 대체농지 조성비와 농지전용부담금으로 30억원, 문화유적 발굴조사비로 29억원 등을 각각 부담했다. 이런 식으로 추가 부담한 자금규모가 1백27억원으로 총 사업비 6백50억원의 19.5%에 달했다. 또 B사는 다른 지방산업단지를 개발하는데 농지 및 산림전용부담금과 대체조림비 등으로 사업비의 6.3%에 해당하는 금액을 준조세로 물었다. 건설업체인 C사는 아파트부지 조성사업에 대체농지조성비 등으로 사업비의 7.2%를 부담했다. 이처럼 기업활동에 과다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준조세는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기협중앙회가 지난해 9월 전국의 5인 이상 중소 제조업체 4백개사를 대상으로 '중소기업 준조세 부담실태'를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들은 지난 2001년 당기순이익의 44.7%를 준조세로 부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준조세 규모는 같은 해 연구개발비의 61.5%, 조세의 86.9%에 달하며 매출액의 1.2%에 이르는 수준이다. 업체당 평균 1억4천만원으로 지난 98년에 비해 75%(6천만원)나 증가해 중소기업의 경영 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경련 신종익 규제조사본부장은 "최근 국내 주요기업 9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이 납부한 준조세는 7조3천16억원으로 세금 납부액(7조3천3백24억원)과 맞먹는 규모였다"고 소개했다. 이쯤되면 '준조세가 기업을 잡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2001년 한햇동안 정부 각 부처에서 거둬들인 각종 부담금은 모두 6조4천7백73억원(기획예산처 집계)으로 한해전보다 46.5% 증가하는 등 갈수록 늘고 있다. 부담금 종류도 2000년 98개에서 1백1개로 증가했다. 도로교통안전분담금과 수자원시설수익자부담금 등 9개는 폐지됐으나 전력산업기반기금부담금과 생태계보전협력금 등 12개 부담금이 신설됐다. 지난해부터는 '부담금 관리기본법'이 시행돼 기획예산처에서 준조세 정비에 나섰지만 기업들의 부담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기업이 실제로 내는 준조세의 종류에 비해 정부가 생각하는 준조세의 범위는 엄격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반드시 부담해야 하는 돈이라면 불만이 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운영된다는게 문제다. 준조세 항목에는 대부분 '관련부처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에 따라 징수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한국의 준조세는 해외에서도 악명이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에서는 명목상 세금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세금 역할을 하는 각종 수수료 부과금 등 준조세가 많다"면서 "조세제도의 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제시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특정사업이나 정부산하기관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되는 준조세를 과감하게 통.폐합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