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화제의 책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분과 간사인 윤영관 서울대 교수가 쓴 '21세기 한국정치경제 모델'(신호서적, 99년 12월)이다. 노 당선자는 대선 이전에 이미 읽었고 지금 두 번째 읽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수십년간 집중됐던 권력의 분산을 통해 한국적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우 그리고 집중구조를 넘어서'라는 부제에서 보여지듯이 중산층 중심의 개혁을 주장한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총수 권한을 분산시켜라' 한국의 핵심 과제는 '효율적인 자원배분 시스템 구축'이며 이를 위해 기업 금융 노동 공공 등 4대 부문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기업부문은 총수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고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채권은행(key bank)이 대출기업의 신용관리 경영컨설팅 총여신한도제를 실시해야 하며 사외이사로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과 기업간의 건실한 관계 정립을 위해서는 은행의 감시자 역할이 필요하다. 은행 소유는 물론 재벌의 2금융권에 대한 지배력도 차단해야 한다. 은행장 선출권을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노동부문은 유연화와 숙련도 향상이 핵심과제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직업훈련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정부 조직도 노동부 산자부 교육부 과기부 등 유관부처간 통·폐합이나 유기적 협력을 통해 이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공공부문에선 특수 권력조직(국가정보원 검찰 국세청 등으로 추정됨)을 민주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공정위는 강화, 국세청은 중립 게임의 규칙을 집행하는 1차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권력과 다른 부처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관료가 아닌 경제.법률 전문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국세청은 정치적 중립을 위한 특단의 제도적 보장책이 필요하다. 정치와 금융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의 독립이다. 통화정책에서 한은을 철저히 독립시키고 정부와 한은간에 물가안정 목표에 대해 매년 협약을 맺는 방안도 추진할 만하다. ◆ '사람보다 제도를 믿어라' 국가는 '공정한 심판자' '체제 유지자'로서의 역할을 위해 필요없는 규제는 풀어주고 공정한 경제질서에 필요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시제도 개선과 법과대학원(로스쿨) 도입 등 인재개발 시스템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경제 개혁의 근본적인 초점은 '사람보다는 제도를 믿고 게임의 규칙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정치적으로는 재벌과 노동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중산층을 정치세력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