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이 있고 술(術)이 없으면 그 응용이 충분치 못하므로 만족스러운 업적을 올릴 수 없다. 술이 있고 법이 서지 않으면 국가가 혼란에 빠진다.법과 술은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며,군주가 천하를 능히 다스리기 위해 함께 갖추어야 할 정치의 덕목이다'

법가 한비자의 말이다.

새 세기초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올라서기 위해 대내적으로 꼭 해야 할 우선과제가 정치개혁과 법치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정치개혁을,이회창 후보는 법치를 이룰 적임자라고 자임하였다.

정권교체보다 정치개혁을 열망한 20,30세대의 헌신적 활약에 힘입어 노후보가 당선되었다.

노후보의 당선 자체가 낡은 정치판을 갈아엎는 상징성을 띤다.

따라서 정치개혁은 앞으로 '물 흐르듯'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법치다.

이회창 후보가 내세운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는 선진국의 기본전제이다.

이후보의 제가(齊家)에 흠이 있었고,주위인물들이 법과 원칙에 충실한 면면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보가 내세운 구호가 어필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 시대에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이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지금까지 법을 어기거나 악용한 자들은 서민들이 아니라 기득권층이고,근로자들이 아니라 기업주이며,기업주도 영세중소기업인들이 아니라 주로 대기업과 재벌의 오너이다.

이런 국민감정에 편승하여 근래에 우리 정부는 '못가진 자'와 '가진 자'가 대립할 때 못가진 자의 불법행위를 용인하면서 가진 자가 적당히 타협하도록 종용하였다.

그 결과 못가진 자는 으레 떼를 쓰고,가진 자는 마지못해 양보하는 대신 다른 편법을 구사하곤 했다.

단적인 예를 노사관계에서 볼 수 있다.

1998년에 기업이 일정한 조건하에 고용조정을 할 수 있도록 노동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노조가 기업의 고용조정을 경영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반발하면 정부는 노사가 원만하게 타협하라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런 정부 입장을 잘 알기 때문에 노조는 더욱 강성이 되고,기업은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노당선자는 노사분규현장에서 원만하게 타협하도록 팔을 걷어부친 경험을 바탕으로 '노사분규와 계층갈등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에는 내가 적임자'라고 유세기간 중에 말했다.

노사가 사회적 동반자관계를 갖도록 정부가 적극 개입하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일견 좋은 말이고 바람직한 소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것 중의 하나인 대중영합적이고,법과 원칙을 무시한 노사관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것과 같다.

새 시대에는 법과 원칙에 입각한 자율적 노사관계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원칙없이 타협하도록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억지와 전략적 행동이 기승을 부리게 만들어 사회경제적 손실을 최대화시킨다.

노당선자는 경제개혁 지속을 다짐하는 한편 국민통합과 노사화합을 기하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런 좋은 것들을 잘 꿰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한비자가 말한 법과 술이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법다운 법을 만들고,개정할 건 조속히 개정하여 누구든지 제대로 지키게 해야 한다.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를 뽑아 큰 잘못이 없는 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고,법정임기를 채우면서 소신껏 일하도록 하는 용인술을 써야 한다.

이런 법과 술이 법치의 핵심이자 좋은 정치의 요체이다.

우리는 민주화시대 이후에도 성공적인 대통령을 가지지 못했다.

그 이유로는 낡은 패도(覇道)정치,권력형 부정부패,친인척 비리 등이 거론된다.

노당선자는 이것들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에 더하여 법치를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미판 대중영합주의를 DJ가 도입하였고,MH가 정착시켰다고 평가받으며 실패한 대통령의 반열에 오를지 모른다.

법치는 경제학에서도 사회 하부구조의 근간으로서 국가경쟁력과 경제성장의 원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10년전 YS,5년전의 DJ가 퇴임 때 참담하거나 씁쓸할 것이라고 상상했겠는가.

역지사지는 물론 '역시사지(易時思之)'의 사려로 새 시대의 화두인 정치개혁과 법치가 물 흐르듯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ksah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