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20~30대가 한국사회의 신주류로 떠오른 한 해였다.

지난 6월 월드컵 축제 때 '대~한민국'이라는 하나된 목소리를 내며 전국을 붉게 물들인 젊은 세대들의 응집력은 마침내 대통령 선거의 판세를 바꿨다.

기성 세대의 보편화된 가치와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변화를 갈망한 이들의 솟구치는 에너지는 21세기 한국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일류를 고집하는' 뉴 프로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격동의 한 해'를 되돌아보는 대담을 가졌다.

< 참석자 >

<> 송명철 향수마케터(37.빠팡에스쁘아 팀장)
<> 한만호 파티플래너(31.닥스클럽 주임)
<> 나윤경 커뮤니티가드너(26.프리챌 대리)
<> 이주은 마술공연기획자(25.비즈매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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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은 팀장 =전국을 후끈 달군 월드컵을 빼놓고 올해를 얘기할 수 없겠죠.

온 국민을 마술에 걸리게 한 '꿈★은 이루어진다'는 월드컵 메시지는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 같아요.

▲ 나윤경 대리 =맞습니다.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의 젊은 세대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무관심과 방관의 세대로 치부됐던 신세대들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신주류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의 단초를 열었다고 봐요.

▲ 한만호 주임 =가슴에 잠재돼 있던 에너지를 탁트인 광장에서 분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금기시돼 왔던 태극기조차 패션의 대상으로 삼는 신세대들의 거침없는 행동은 신선한 충격이었죠.

국가적인 행사를 자신들만의 축제로 만들며 타인과 어울리는 광장의 문화를 체험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들의 행동을 애국심과 연계시키는 건 그 다음 문제고요.

▲ 송명철 팀장 =광화문을 뒤덮은 붉은 악마들을 지켜보니 불현듯 지난 87년 민주화항쟁을 떠올랐어요.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던 그때의 절박함과 지난 6월의 축제분위기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다는게 무리일 수도 있지만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며 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모습은 그때와 똑같았습니다.

저같은 386세대에겐 현실적인 삶에 쫓겨 잠시 잊고 지낸 국가의 존재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기도 했죠.

▲ 나 대리 =월드컵 때 보여준 신세대들의 참여의식이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제가 관리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더라도 현실 정치를 넘어 꿈을 현실로 이끌어내려는 신세대들의 정치참여 열기가 대단했거든요.

정치라면 진저리를 치던 저도 부모님을 설득해 지지후보를 바꾸게 했을 정도이니까요.(웃음)

▲ 한 주임 ='참여'와 '젊은 선택'이 기존 선거의 이념대결을 세대교체 바람으로 바꾼 것 아닐까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처럼 밑으로부터의 자생적 조직이 인터넷이란 가상공간과 정치현장의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대선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 같아요.

▲ 이 팀장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이 '386세대와 N세대의 걸작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아요.

2002년 대선은 저같은 평범한 시민이 인터넷이라는 무기로 무장해 펼친 '게릴라전' 같았던 느낌이 들어요.

▲ 송 팀장 ='정치는 남의 일'로 외면했던 우리 신세대가 중요한 정치변수로 급부상한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기득권층의 퇴장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력이기도 하고요.

20∼30대를 소비 타깃으로 삼는 저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봅니다.

'내멋대로 산다'는 2030 세대 사이에서도 그들만의 공감대와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죠.

▲ 나 대리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사회는 신세대와 기성 세대간의 차이를 우리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벌려 놓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감성과 개인주의로 무장한 신세대들의 생각이 언제나 옳지는 않죠.

즉흥적인 자유주의를 섣부르게 진보나 개혁으로 착각하는 일부 젊은 세대들의 현실 인식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 한 주임 =좋은 지적입니다.

현실과 조화될 수 없는 개혁은 한낱 이상적 구호에 불과하니까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풀어야할 숙제도 바로 이 문제가 아닐까요.

분명 젊은 세대가 노 당선자에게 바라는 변화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도 있을 거예요.

이러한 요구를 어떻게 흡수하고 젊은 세대들을 아우르느냐가 사회 안정의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 이 팀장 =월드컵으로 촉발된 성숙된 시민문화는 여중생추모 촛불시위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하나가 되는 모습에서, 선거열기에 그냥 묻혀 지나갈 수 있는 강자의 부당함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에서 우리 국민의 참모습을 봤습니다.

▲ 한 주임 =누군가 머리를 내리누르면 밀쳐내고 싶은게 사람의 감정 아니겠어요.

미군철수를 요구하던 과거의 과격한 반미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미군의 부정을 바로잡겠다는 당당한 주체성의 표현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국가와 국가간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절실한 바람이기도 하고요.

▲ 나 대리 =올해 2002년은 정말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보여준 한해였던 것 같아요.

송 팀장님, 올해의 우리 사회를 하나의 향기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 송 팀장 =나무에 끼는 이끼에서 추출하는 늦가을 느낌의 시프레향이라고나 할까요.

향수를 즐겨 쓰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선택받은 향이라고도 하지요.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까다로운 향이기도 하죠.

올해는 분명 우리사회 발전에 있어 전환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기회를 국운 상승과 사회개혁으로 이어가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맡겨진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