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이후 각 정당에서는 새로운 정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당내 변화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예상치 않은' 선거패배로 한동안 마비상태에 빠진 것 같았던 한나라당은 지난 27일 '당과 정치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현경대 홍사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당 개혁 추진을 본격화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손쉬운 상대'로 보았던 노무현 후보와 맞서 패배한 데에는,변화를 여망하는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탓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특히 변화의 욕구가 강한 20,30대 유권자들은 철저히 한나라당을 외면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찍부터 이러한 현상이 감지되어 왔지만 한나라당은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의 당내 개혁은 사회적 변화를 수용해 내지 못하게 만든 당내 조직상의 문제점과 비효율적인 정책 결정과정에 대한 진단과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었던 새천년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한 것은 임기 말 김대중 정부의 인기 하락과 이에 따른 당수직 사퇴라는 위기 상황을 정당 개혁을 통해 성공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해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 일반 국민들을 참여시켰고,그 결과 노사모를 비롯한 자발적인 지지자들을 규합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노무현 당선자가 이야기한 대로 민주당은 선거 승리에 기여한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은 지난 5년 간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재집권을 위해 단결해 왔지만,당 운영은 과거 김영삼 김대중의 정당과 다르지 않았으며,당내 이견과 경쟁이 허용되지 않는 사실상 1인 지배정당으로 존재해 왔다.

민주당이 국민 참여경선제 도입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동안에도 한나라당은 여론에 떠밀려 마지 못해 대통령 후보 경선제를 도입했고,그나마 당내 대의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생색내기'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도 한나라당은 권위적이고 관료화된 정책결정으로 인해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참신하고 효과적인 선거 운동을 펼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결국 지금 한나라당에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인적 교체 뿐만 아니라,정당의 체질과 구조를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일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 패배에 대한 탄식과 안타까움은 느껴지지만 아직도 뼈를 깎는 반성과 변혁에 대한 절실함은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위기의식보다는 오히려 당내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요구를 정당 개혁을 명분으로 한 단순한 당권 경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기 변혁에 실패한 정당은 유권자의 신뢰를 얻어낼 수 없다.

영국 노동당은 1979년 선거에서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권력을 넘긴 후에도 당 개혁을 소홀히 했고,그 결과 83년,87년,92년 선거에서도 잇달아 패배했다.

노동당이 다시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신노동당(New Labour)이라는 기치 하에 당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낸 토니 블레어가 당을 이끌었던 97년 선거에서나 가능했다.

그러나 그 사이 노동당은 18년 동안 야당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선거에서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고 이를 수용한 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한 것은 여러 가지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한나라당 역시 미래지향적인 개혁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과거와 같이 지역주의에 의존한 반사적인 이익에만 매달리려 한다면 앞으로도 한나라당의 정치적 미래는 그다지 밝다고 볼 수 없다.

경쟁력 있는 대안 세력으로서 야당의 존재는 민주정치에 핵심적인 요소다.

그러나 이번 선거 과정에서 누구보다 한나라당이 절실히 깨달았겠지만,정부 여당의 실정(失政)이 저절로 야당에 대한 지지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개혁특위의 출범과 함께 한나라당의 근본적인 당 개혁을 기대해 본다.

kangwt@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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