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변화한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면서 끊임없이 대양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혜성과 같이 뜨는 기업.경영인이 있으면 일선에서 물러나는 기업.경영인도 있는 법이다.

'2002 한국의 재계'도 어김없이 '뜬 별'과 '진 별'이 교차했다.

특히 벤처와 정보기술(IT) 업계는 버블이 꺼지면서 최고경영자(CEO)들의 부침이 심했다.

재계에서는 김승연 한화 회장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숙원이었던 대한생명 인수에 성공함으로써 그룹 덩치를 일약 재계 5위로 끌어올려 주목을 받았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한국인 최초로 국제상업회의소(ICC) 부회장에 선출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화끈한 화법으로 재계의 대변인 역할을 도맡아 정부 당국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그룹 순익 15조원을 달성해 사상 최대 이익을 냈고 구본무 LG 회장은 그룹 경영체제를 지주회사로 전환시켜 경영 투명성을 높였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도 2년 연속 사상최대 실적을 올리면서 세계 자동차업계 글러벌 톱5 진입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손길승 SK 회장은 KT와의 지분맞교환을 성사시키며 SK텔레콤의 경영 안정성을 한층 키웠다.

'타이거 박'으로 불리는 박운서 데이콤 회장은 특유의 저돌성을 발휘, 하나로통신을 제치고 파워콤 인수에 성공하면서 일약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올해 최고의 한해를 보낸 CEO의 한 사람으로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사장을 빼놓을수 없다.

휴대폰 '애니콜'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으며 세계 시장점유율 10%대 벽을 깨는 초유의 기록도 세웠다.

넷마블의 방준혁 사장은 온라인 게임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기린아로 불린다.

웹게임사이트 넷마블의 유료화 성공으로 올해 2백70억원의 매출과 1백58억원의 순이익을 내 돈방석에 올랐다.

유통업계에선 신동빈 롯데 부회장과 정지선 현대 부회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동안 대외 활동을 자제해 왔던 신 부회장은 롯데의 유통사업을 직접 챙기면서 전경련 산하 유통산업위원회 위원장으로 유통산업 위상 강화에 힘쓰고 있다.

현대백화점 정 부회장은 약관의 나이에 부사장에서 부회장으로 뛰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반면 올 한해 재계는 몇몇 큰 별을 잃었다.

지난 11월 타계한 고 조중훈 한진 전 회장은 '한국 수송사의 거인'으로 불리던 인물.

해방 직후 트럭 1대로 한진상사를 창업, 뚝심으로 오늘날 대한항공 한진해운 등 21개 계열사로 구성된 수송그룹을 일궈냈다.

박정구 금호그룹 전 회장, 허준구 LG건설 전 명예회장도 세상을 떴다.

고 박 전 회장은 금호생명과 동아생명, 금호타이어와 금호건설을 각각 합병하는 등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이들과 달리 일부 벤처기업인들은 불명예스런 퇴진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때 '코스닥 황제주'로 평가받던 새롬기술 오상수 전 사장은 허위공시와 배임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커뮤니티 사이트인 프리챌의 전제완 전 사장도 주식 가장납입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날개가 꺾였다.

코스닥 간판주자였던 모디아의 김도현 사장, 세원텔레콤 홍성범 회장은 주가조작과 불법 주식매매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벤처업계 대부로 불리던 메디슨의 이민화 전 회장은 회사 부도와 함께 경영일선에서 완전 물러나고 빚쟁이 신세가 됐다.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은 자회사인 두루넷과 대주주로 있는 소프트뱅크커머스코리아가 각각 나스닥 퇴출 경고와 대규모 IT 유통사기에 휘말리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인터넷 전도사로 명성을 날린 이금룡 전 옥션 사장도 지난 7월 대주주인 미 e베이와 불화로 대표이사직을 내놓으면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강현철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