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철 < 일본 유통과학대학 상학부 교수 > 한.일 두 나라가 공동 주최한 월드컵 경기가 성공적으로 끝난후 양국 관계는 급속히 가까와 지고 있다. 일본 내각부가 12월21일 발표한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54%나 됐다. "양국 관계가 양호하다고 생각한다"는 답변도 58%에 달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양국간 경제 교류도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일본 신문에는 거의 매일 한.일 기업간 제휴웅 보도하고 있고 투자 효율이 높은 한국에 대한 직간접 투자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외환 위기를 극복한 한국 기업의 경영자에 대한 성가가 높아지면서 카를로스 공(닛산 자동차를 재생시킨 프랑스인 CEO)같은 기업가를 영입하는 거점으로도 한국 기업이 일본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IT(정보통신) 기술면에서 한국의 경쟁 우위 분야가 늘어나자 기술 제휴 및 일본으로의 역기술 이전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재 논의중인 한.일 자유 무역 협정(FTA)도 파트로서의 인식이 깊어지고 있어 예상 보다 빨리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한.일 경제 관계의 성숙에도 불구하고 극복해야할 장애물은 여전히 남아있다. 바로심각한 대일 무역 역조 문제다. 한국의 산업 및 경제 구조의 불가피한 대일 의존도 때문에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구조적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대일 역조의 해소는 대일 수출의 비약적 확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정책 입안자나 연구 기관,기업인들은 건국 이래 족쇄가 되고 있는 대일 무역 역조 타개책과 관련해 진부한 인식을 갖고 있고 해결책 또한 탁상공론에 그치고 있다. 정책 당국자나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의 대일 수출이 부진한 이유를 예외없이 일본의 불공정한 비관세 장벽 문제에 돌리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치와 행정,경제의 중심지인 도쿄에 정치 재계 학계 등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종 비관세 장벽의 사례를 수집하고 그 개선을 요구하는 정책적 방법론에 의존해 왔다. 일본은 한국측의 비관세 장벽 해결 요구에 대해 일본의 정계나 관계 또는 경제 단체의 유력 인사는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조속한 시정을 관성적으로 약속하고 한국측은 만족해온게 그동안의 한일 무역 관계의 전부였다. 이같은 무역 역조의 해결 방법은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도변하지 않고 있다. 21세기 들어선 지금도 대일 무역 역조 폭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일관계가 크게 개선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무역 역조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파악,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비관세 장벽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무역 역조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수출을 막았던 일본 기업의 폐쇄적 계열 거래,복잡하고 다단계 적인 유통 구조,독특한 상관행은 일본 제조 기업의 배타적 시장 전략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계속된 불황의 결과 소비자의 저가품 선호 경향과 가격 파괴 경쟁으로 대형 할인점이 유통의 주도권을 잡아 비관세 장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다. 대일 수출 확대를 위해선 더 이상 소모적으로 비관세 장벽의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고심하기 보다는 비관세 장벽의 붕괴를 주도하고 가격 경쟁력과 품질을 고루 갖춘 한국산 제품을 기다리는 의욕적인 일본내 소매 기업을 거래 파트너로 찾아내야 한다. 여전히 선진국중 최고의 개인 소득을 보유하고있는 1억3천만명의 소비자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도 시급하다. 대일 수출 확대를 위한 액션 프로그램은 더 이상 도쿄의 고층 빌딩에서 구상돼선 안된다. 세분화된 소비 시장의 분석을 위해 일본 열도 전역을 망라한 상업 지도를 펼치고 야간행 신칸센을 타야한다. 정치인을 만나 악수를 하고 역조 시정을 부탁하기 보다 재일교포의 60%가 밀집해 있고 전체 구매력에서 한국 시장 보다 더 큰 칸사이(關西)지역의 대형 양판점의 점장이나 바이어를 만나 한국 상품을 파는 게 훨씬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무역 역조 개선의 새로운 접근법은 한.일 관계가 더 이상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이고 성숙한 발전을 앞당겨줄 수 있다. 일본이 내수 시장 보호를 위해 대일 수출을 정책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 전근대적 상관행의 변혁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일본의 소비자와 소매 기업,나아가 유통 시스템 전체가 우리의 시장 진입을 바라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숙된 한.일 관계는 대일 수출 확대를 통한 무역 역조 문제의 해소없이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