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외교분야에서 미국 등과의 수평적인 외교관계를 강조해왔다. 그러한 그가 북한 핵문제의 돌출로 취임 전부터 외교·안보분야의 역량을 평가받는 시험대에 올랐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핵시설 재가동 수순을 밟기 시작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는 현정부가 처리해야 할 현안이다. 하지만 정권 인수인계 기간이어서 대통령 당선자의 입장이 현직 대통령의 정책의지 못지않게 중요한 시기다. 노 당선자는 그동안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와 함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측은 북한이 핵을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 당선자로선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한편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야 하는 고난도의 숙제를 풀어야하게 됐다. 또 선거운동 기간 중 쟁점화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를 둘러싼 한.미관계의 재정립도 중요한 과제다. 미국은 SOFA 개정 의사가 없음을 수차 강조했으나 노 당선자는 대선기간중 SOFA 개정을 약속한 바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노 당선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미간 수평적 외교관계가 설정돼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로 인해 경우에 따라선 노 당선자와 미국 사이에 갈등을 빚게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마찰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관계의 근본적 틀이 흔들리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노 당선자는 이와 관련, 24일자 프랑스 르몽드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미동맹을 위기에 빠트릴 것이라는 추측은 전적으로 근거없는 것"이라며 "대북 입장이 워싱턴 강경파와 다를 수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이익을 미국의 그것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이지 한.미관계를 훼손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노 당선자는 지난 20일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한 언급은) 책임있는 외교적 행위인 만큼 정부와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해 다소 유화적인 입장을 밝혔다. 노 당선자는 또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한.미관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요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미국과의 상호 협력을 통해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위신을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당선자의 대북정책은 현정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노 당선자는 현정부에서 기초작업이 끝난 개성공단 건설이나 금강산 육로관광, 남북 교류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 과정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내심 남북경협의 속도 조절을 원하고 있는 미국과 어떻게 조율해 나갈 것인지도 노 당선자의 외교적 과제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