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겨울철 '볼거리'중 하나는 건물 밖에서 추위에 떨며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다. 모든 오피스빌딩이 금연인 까닭이다. 유일한 예외는 파크애브뉴에 있는 필립모리스 본사. 세계 최대 담배회사로 뉴욕시에 대한 고용과 납세를 의식해서 예외로 두었다. 하지만 최근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모든 식당 금연을 추진하면서 '예외'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말보로를 즐겨 피우는 루이스 카밀러리 회장도 조만간 어쩔 수 없이 허용구역인 2층의 '제품실험실'로 가지 않으면 건물밖으로 나와야 할 입장이다. 미국 전역에서 담배는 이제 마약과 거의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다. 물론 이같은 인식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다. 지난 80,90년대에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각종 소송이 큰 역할을 했다. 법정투쟁 중심의 총체적인 '담배와의 전쟁'결과인 셈이다. 90년대 말 피크였던 담배전쟁이 조용히 막을 내리는가 싶더니,요즘 그 자리에 '패스트푸드'가 들어서고 있다. 지난 여름 이후 각종 집단소송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뉴욕 법원에서 벌어진 첫 심리에서 소송대리 변호사인 반자프 조지워싱턴대학 교수는 '비만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이 매년 30만명을 넘는다'며 '이는 영양정보를 제대로 표시하지 못한 패스트푸드업체의 책임'이라고 공박했다. 반자프 교수는 그간 7백여건의 담배소송을 승리로 이끌었던 담배전쟁의 영웅. "처음엔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폐암환자들의 소송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패스트푸드업체를 상대로 한 소송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80년 이후 어린이 비만은 두배,10대들의 비만은 세배 늘었다는 정부발표에 흥분하는 미국인들이 반자프 교수의 든든한 우군이다. 식품회사들은 초비상이다. 담배와 달리 패스트푸드는 중독성이 없고 살찌는 '유일한'이유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상황은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 지방성분을 대폭 줄이는 등 식품회사들의 근본적인 정책변화가 없는 한,추운 겨울날 건물밖에 서서 햄버거를 먹는 풍경도 머지않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