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 스님, 인기가수, 배우, 교사, 변호사 할 것 없이 각계각층에서 저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80년대 한국에서 격렬한 반미시위가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분노의 폭'이 넓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의 정론지 워싱턴포스트(WP) 인터넷판은 9일 `미군에 대한 분노로 들끓는 한국'이라는 제하의 르뽀 기사를 통해 지난 7일 밤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빽빽히 메운 촛불시위 현장을 비교적 자세히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다 수갑에 채여 끌려가는 뉴욕교포 홍석정(24.여)씨의 사진과 함께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분노를 전했다. 이 신문은 기사 첫 머리에 `루시아(44)'라는 이름의 수녀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양키 고 홈'을 외치는 시위 장면을 소개했다. 한국에서 반미감정은 그동안 숱한 부침을 거듭해왔지만 이번처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반미구호를 외치는 상황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또 맥도널드 세대로도 불리는 한국의 20, 30대는 미군의 존재가 북한의 위협을 지켜준다는 전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한 교수의 말을 인용, "현재는 민족주의와 주한미군의 존재가 갈등하는 형국"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전국적인 항의 시위 때문에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일행의 방안 일정이 전격 취소된 사실을 소개한 뒤 최근 한국에서는 대선 정국을타고 반미 문제가 초미의 이슈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특히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양당 후보는 한목소리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과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주한미군 문제를 직접 거론한 적이 있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고 보는 한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경우 SOFA 개정을 요구하고 있긴 하지만 대북정책에서는 부시 행정부와거의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또 한국의 반미시위는 문화적인 차이에도 기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군 책임자나 정치인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것이 통례로 인식되지만 미군 당국은 사병들의 프라이버시를 내세워 어떤 행정조치를 취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어 한국인들이 분노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옥철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