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경제단체들은 신이 나있다. 백악관과 공화당에 들이밀 '청구서'를 작성하느라 들떠있는 것이다. 이들은 친기업적인 공화당에 정치자금을 듬뿍 안겨줬다. 그 덕에 공화당은 지난달 중간선거에서 상.하 양원을 장악하는 대승을 거뒀다. 이제 기업들이 그 대가를 받아내기 위해 청구서를 들이밀 차례다. 청구서 내용은 다양하다. 석유회사들은 로키산맥 서쪽의 유전개발을 요청할 방침이다. 탄광협회는 새로운 탄광개발을 위한 허가를 요청할 계획이다. 전력회사들도 무엇을 요청할지 협의중이다. 환경론자들의 반발이 걱정되지만 크게 우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동안 갖다 준 돈을 생각하면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재계의 청구서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게 그들의 생각인 듯하다. 재계는 10년전만 해도 공화당과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적절히 배분했다. 대표적인 19개 산업에서 10년 전 공화당에 기부한 자금은 1억3천5백만달러, 민주당에 기부한 자금은 1억2천8백만달러로 엇비슷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서서히 공화당으로 돈 줄을 돌렸다. 각종 규제를 완화해 주고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민주당보다 덜 까탈스런 공화당이 자신들에게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판단에 따라 올해는 공화당에 2억1천3백만달러를 기부했다. 민주당에는 절반 조금 넘는 1억2천1백만달러만 줬다. 준 만큼 받아내기 위해 청구서를 준비하는 재계를 보면 미국도 '돈 정치'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같은 공생관계에 대해 비난의 소리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경제단체가 특정 정당에 대가성 정치자금을 냈다면 정권이 위협받을 정도로 시끄러울 텐데도, 이곳에서는 별 탈없이 정치자금이 오가고 있다. 어디에서 그런 차이가 오는 것일까. 미국의 경우 정당마다 성향이나 정강정책을 분명히 한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더 다른 점은 건네지는 정치자금이 고스란히 공개된다는 사실이다. 재계가 '저질 금권정치'라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청구서를 준비하는 것도 그런 환경이어서 가능한 것 같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