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의 핵심기능은 자금중개다. 자금이 남는 자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자금이 모자라는 자에게 대여하는 기능이다. 금리가 시장기능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금조달이 자금공급보다 금융회사에 중요했다. 반대로 오늘날에는 자금공급이 자금조달보다 중요한 기능이 되었다. 자금조달은 금융회사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변수이지만,자금공급은 금융회사의 생사를 결정하는 변수다. 자금을 제공받는 자의 상환능력은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리스크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따라서 금융회사는 자금수요자의 현재 재무건전성과 미래의 사업성을 예의주시하고 이에 따른 합리적인 자금공급결정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부적절한 신용제공을 한 금융회사는 자금수요자와 운명을 같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최근 몇년 간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1997년 말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사건이라는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후 정부 기업 노동 금융 등 여러 부문의 구조조정을 했지만,당시 문제의 핵심은 기업의 과잉부채였다. 내실보다 규모를 중요시하는 기업자금수요자들에게 금융회사가 과다한 자금을 공급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과 금융회사가 사망선고 내지,공적자금을 통해 부담을 국민에게 떠안기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전대미문의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은 우리 금융회사들은 주고객을 변경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위험이 큰 기업고객을 축소하는 대신 개인고객을 확대했다. 거액의 아파트 구입자금을 설정료 없이 세일하고,지하철역 대학교내까지 찾아다니며 직업 연령 소득 재산을 불문하고 신용카드를 쥐어주었다. 그 결과 외환위기를 맞은 지 5년이 지난 후 또 다른 문제가 등장했다. '대출 및 신용카드 대금이 30만원 이상 3개월 이상 연체해 모든 금융거래가 중단된'가계신용불량자수가 최근 2백50만명을 돌파했다. 금융회사는 새로 선택한 주고객과 더불어 다시 부실화될 위험한 상황이다. 이제 우리 금융회사들은 두번째 교훈을 얻고 있다. 기업고객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개인고객도 위험하다는 사실을.금융회사의 위험이 주로 신용위험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 교훈이 같은 내용이라면,주고객만 바꾼 우리 금융회사들에게 첫번째 교훈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간 우리 기업들은 경험과 시련을 통해 내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됐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은 아직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여전히 내실보다 규모를 상위개념에 두고 새로운 시장만 보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있다. 작년에 큰 이익을 얻었던 카드시장에서 올해 많은 손실이 발생하자,이번에는 보험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소위 방카슈랑스라고 불리는 은행의 보험상품 창구판매가 내년 8월 허용될 예정이다. 프랑스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은행의 보험대리점업은 활로를 찾는 국내 은행들에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은행들은 보험권 전문가들을 스카우트해서 신규사업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일수록 공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자회사로 보험회사를 설립해 옹골차게 새 사업에 나설 태세다. 그러나 보험업은 만만한 사업이 아니다. 은행업이나 카드업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또 이익을 내기 어렵다. 얼마전 방카슈랑스가 허용된 미국의 은행들도 대리점판매에 치중할 뿐 자회사설립은 기피하고 있다. 99년 트레블러스보험그룹과 합병한 씨티그룹도 성장성과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합병한 보험회사를 최근 매각했다. 은행상품과 대체성이 높은 저축성보험상품이 창구판매되면 은행의 예·적금이 감소할 위험도 있다. 방카슈랑스는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대리점판매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후에 자회사설립을 허용해야 한다. 특히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은행들은 보험인수위험을 떠안게 되는 보험자회사를 설립하지 않아야 한다. 손실부담능력이 있는 우량은행에만 보험자회사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 우리 은행들이 기업부채 가계부채에 이어 국가부채를 더 이상 키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hjjung@skk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