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모두 어디로 갔나 .. 金秉柱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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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호기심이나 근심이 지나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속담이 있다.
사람도 그럴 테지만 요즘 궁금증 가운데 세가지만 골라 주체할 수 없는 의구심을 달래보려 한다.
첫째,주요 통상협상 때마다 농업문제가 발목을 건다.
지난 10여년 간 우루과이라운드(UR),세계무역기구(WTO),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 주요 고비마다 농민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도합 1백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그 돈 모두 어디 갔기에 재야농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요즘에도 허구한 날 계속되는가.
중국과의 통상마찰로 부각된 마늘문제 때문에 다시 1조수천억원이 투입되리라 한다.
그 돈 또 어떻게 나눠먹기 될 것인가.
연간 GDP의 약 4%정도 밖에 기여하지 못하는 부문이 국민경제 몸체를 흔들어 멍들게 하고 있다.
그간 쏟아부은 그 돈 어디로 간 것인가.
둘째,북한이 13명의 일본인 납치를 시인한 이후 일본열도는 이 문제로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일본정부는 납치피해자가 70∼80명 이상 더 있다고 주장했다.
강점기간 조선인 강제징용 등 피해 인구수가 몇천·몇만배인 점을 감안하면 석연치 않은 감정도 가질 수 있지만 우리의 관심은 다른데 쏠리게 된다.
그것은 북한의 김정일이 밝힌 일본인 납치 목적이 대남사업요원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훈련시켜 양성한 간첩들이 한둘이 아닐 터인데,밝혀진 것은 KAL기 폭파에 가담한 김현희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훈련된 공작원들은 다 어디 갔나.
6·15 공동선언 때문에 북한이 간첩 남파를 포기했나.
기왕 남파된 자들이 모두 전향 자수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상당수가 암약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들의 변신·은폐술이 뛰어나 당국이 잡지 못하는가,아니면 '통일 일꾼'이라서 잡지 아니하는가.
민간·공공부문 구석구석에 깊숙이 숨어들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직한 두더지 공작원들은 누구일까.
현 정부 들어서부터 간첩체포 보도가 거의 전무했다.
왜 그럴까.
셋째,가장 궁금한 것은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대출해 준 4천억원의 행방이다.
이것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각 부문의 구조조정을 통해 이루고자 노력해 온 기반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잠재적 파괴력을 가진 의혹사건이다.
당시 경제위기가 피상적으로는 단순하게 외환보유고 부족으로만 비쳐졌지만,내면적으로는 금융·기업·노동·정부·정치·사회문화 등 복합적 구조를 가진 질병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어느 정도 치유성과를 보인 것은 외환·금융·기업부문에 국한되었고,노동 등 여타부문은 아직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금융기구 및 시장에서 그간의 개혁성과를 높이 평가해 줘 다행이지만,위기의 핵심부분에 있던 정경유착·관치금융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 바로 금번 사건이다.
환란 이후 수많은 은행원·회사원들이 목을 잃은 단두대 위에 세워졌던 '투명성',리스크 관리,효율성이란 이름의 개혁기치가 결정적으로 퇴색위기를 맞았다.
대출의 신청·심사·승인·사후관리 등 모든 과정에 의문이 간다.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리하고도 개혁을 말할 수 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은 책임회피에 급급하고,야당은 대선에 바빠서인지 조용하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가신용도와 동일시되는 금융회사의 신용도가 이렇게 먹칠되면, 일반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아무리 구조조정에 노력한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가산금리,한국금융상품의 헐값 매기기(Korea discount)에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이 사건의 뿌리를 파고들면 줄기줄기 따라 드러날 고구마들은 무엇이고,그 무게는 얼마나 될까.
궁극적으로 그 잘못의 무게를 짊어져야 할 국민은 궁금하다.
그 많은 돈은 모두 어디로 갔나.
항간에 경제위기 재발론이 심심치 않다.
근래 단기외채비율이 높아져 경계되지만 가까운 시일내 위기재발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번 사건은 노조·농민 등 이익집단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과 함께 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높여주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큰 일도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금번 사건은 결코 작은 일로 치부될 수 없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