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에 사고 뉴스에 팔아야 성공하는 곳이 증권시장이다. 남보다 한발 앞서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대통령선거가 한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지만 벌써 대선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여러 가지 시나리오 형식을 빌려 시장 주변에 떠돈다. 증시의 생리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증시 일각에선 선거 직후 대통령 당선자가 지목할 정권인수위원회 위원장과 경제쪽 책임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기엔 쾌도난마의 현안 처리를 기대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대중 정부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경제현안을 신속하고 깨끗하게 처리해야만 새 정부가 산뜻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극히 상식적인 전제조건도 작용한다. 이같은 바람이 현실로 드러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국경제 상황에 비춰볼 때 새로 정권을 잡은 측은 보다 강력한 경제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하이닉스반도체와 현투증권 등 이른바 현대계열 금융3사 처리문제에서부터 공적자금이 들어간 금융사의 위상정립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 대한 현실성 있는 해결책이 제시될 것으로 증시는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최고통치자가 누가 되든 전(前) 정부의 미해결 경제현안에 대해 손을 대는 것을 미적거려서는 안된다. 물론 해이해진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분열된 민심을 통합하는 일이 더 큰일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첫 평가는 경제부문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고 또 화급하다. 더욱이 경제문제는 정치 사회분야보다 가시적이고 즉각적 결과를 드러낸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증시엔 차기 정권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혼재한다. 무엇보다 시중 돈의 흐름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은행쪽에는 자금이 넘쳐 흐르고 증시로는 흘러들어오지 않는다. 이달 들어 예탁금은 8조8천억~8조9천억원대에서 맴돌고 있다. 늘지도 않고 줄어드는 기미도 찾아볼 수 없다. 거래대금도 하루 2조원을 넘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미국발(發) 호재에 힘입어 급등장세를 연출했지만 미국시장에 이끌려가는 모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선거 이후에 대한 복잡한 수읽기에 시간을 보내 좀처럼 돌을 놓고 있지 않는 것이다. 증시가 눈치보기를 하고 있는 사이 은행은 은행대로 고민이 깊어간다. 증시에서 부동산으로 옮겨갔던 시중 부동자금은 이제 '안전지대'를 찾아나서고 있다. 그 결과로 은행엔 돈이 자꾸 몰려오지만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 시중자금의 은행 편중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대선정국과 무관치 않다. 사실 국내증시 내부요인으로만 볼 때 6개월 이상 약세장이 이어질 이유를 찾기 어렵다. 기업들의 실적은 시장을 실망시키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각고의 구조조정이 결실을 보면서 기업의 성적표는 앞으로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높다. 저금리는 증권 투자를 유인하는 좋은 재료이기도 하다. 미국경제의 불안감과 이라크 전쟁 가능성 등 해외요인이 국내증시에 악영향을 주고 있긴 하지만 이처럼 낮은 주가수준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증권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국증시는 지금 모멘텀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이후 등장할 힘있는 차기정권에 대해 증시의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대선 직후는 새 대통령의 정치적 힘과 영향력이 가장 클 때이고 국민적 지지와 관심도 가장 높은 시기다. 대선 직후 2개월을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ong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