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 침공의사 없다? .. 南成旭 < 고려대 교수.북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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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를 골프에 비유한다면 현재 두세 홀을 지나 몸을 풀면서 본격 라운드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초기의 긴장단계에서 행동과 협상단계로 들어섰다.
미국의 중유지원 중단조치 결정은 사태 초기의 조심스러운 관망세를 지나 적극 대응책의 1단계라고 볼 수 있다.
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침공 의사 없음'을 선언한 것은 본격 라운드 과정에서 상대방의 힘을 빼는 심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12월 대북 중유지원 중단 결정이 나온 지 하루만에 나온 미국 선전전의 일환으로서,'제네바 합의'의 파기라는 국제사회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다.
그간 중유공급은 KEDO의 신뢰성과 제네바 합의문 이행에 있어 미국의 성실성을 대변해 주는 중요한 상징이었기 때문에 중유공급 중단은 미국의 입장에서 어쨌든 부담스러운 조치일 수밖에 없다.
이제 미국의 조치에 대해 북한이 대답할 차례다.
제임스 켈리 특사의 발언으로 북한 핵문제가 불거져 나온 지 한달 보름여가 됐다.
북한 핵문제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지 위기와 낙관 시나리오가 각각 나름대로의 정당한 논리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우선 '위기의 시나리오'를 보자.
'대화에는 대화로,힘에는 힘으로 답한다'는 북한의 전통적인 맞대응식(tit-for-tat) 외교를 사태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면,북한은 다음달부터는 중유공급중단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행동을 취할 것이다.
지난 1994년 봉인된 플루토늄 폐연료봉을 창고에서 꺼내 먼지를 털고 손질하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미국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할 것이다.
중유 50만t이 북한전력 생산량의 15%를 담당하는 엄청난 양이지만,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북한으로서는 그 정도는 채찍이 아니라고 일축할 것이다.
항일 빨치산운동에 뿌리를 둔 '고난 견디기'에 관한 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북한으로서는 합의보다 거부 움직임에 주력할 것이다.
다음은 '낙관적 시나리오'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불가침 발언을 불가침조약 체결의 사전단계로 해석해 표면상으로는 대결자세를 취하면서도 물밑으로 대화국면을 조성해 나갈 것이다.
특히 북측은 부시 대통령의 이번 선언이 역설적으로 미국을 대화테이블로 이끌어냈다는 측면에서 북한의 외교협상이 잘못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사실 북한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악의 축' 국가 리스트에 오르면서 미국과 직접적인 대화 기회를 갖지 못해 초조한 심정을 보여 왔다.
그간 북한은 미 공화당 정부가 '협상에서 북한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협상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라는 논리로 자신들을 배제시킨 데 대해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이었던 만큼 부시 발언을 계기로 본격적인 협상을 준비할 것이다.
북·미는 제네바 합의가 나오는 데 1년반이 소요됐던 만큼 만족할 만한 협상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소요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이다.
두가지 시나리오가 협상 진행방식,절차와 수단을 중심으로 이견을 보이고 있지만,어떤 시나리오도 파국을 상정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북·미의 입장이 무력충돌로 갈만한 치명적인 이익이 존재하는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핵 소유가 북한의 종국적인 목적이기보다 북·미협상의 수단이라고 본다면 탄력적인 접근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이제 양측은 겨울내내 실용적인 대화를 은밀히 진행할 것이다.
모든 만남은 언론을 피해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의 물꼬가 호텔에서 격식과 의전을 갖추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뉴욕 5번가의 3평짜리 빵집에서 문제를 풀려는 실무자들간의 진지한 커피 한잔으로 시작되었던 전례를 상기해 볼 때 이번 사태도 실무 당사자들의 실용적인 대화채널이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다만 북한의 이번 대화 상대가 클린턴 행정부가 아니라,힘의 외교를 자랑하는 공화당 행정부라는 것이 북측으로서는 고심의 사항이나 그것이 문제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oskys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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