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문제에 이어 엔화 차입이 은행권의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엔화자금을 빌려와 국내 기업들에게 대출해주는 일종의 "엔-캐리 트레이딩(Yen-Carry Trading)"에 경쟁적으로 나선 결과다. 이런 영업은 예대마진이 큰 반면 환위험에 노출되는데다 차입금 만기와 대출금 만기가 다른 데 따른 기간불일치 리스크도 안게 된다. ◆은행들의 엔화대출 세일 은행들은 일본에서 연 0.7∼0.8%로 자금을 빌린 뒤 국내에서 최고 3.5%의 금리로 빌려줘 마진을 올렸다. 기업들도 저금리의 매력에 끌려 앞다퉈 엔화대출을 신청했다. 기업은행의 경우 엔화대출 잔액은 지난해말 1백26억5천4백만엔에서 지난 6월말엔 1천6백25억5백만엔을 기록했다. 6개월새 무려 12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우리은행이 지난 9월 출시한 '통화전환 옵션부 외화대출'은 한 달여 만에 6천5백억원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신한은행이 지난 7월 판매한 '체인지업 외화대출'도 3개월새 4천억원어치 이상 나갔다. 이 두 상품은 모두 엔화로 대출을 받은 뒤 환율변동에 따라 상환시 통화를 바꿀 수 있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환 리스크 비상 저금리의 엔화자금은 은행이나 기업 모두에 '독이 든'사과에 비유된다. 시중은행을 통해 엔화대출을 받은 기업은 원·엔 환율이 급등할 경우 환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급변동하는 사례는 종종 발생한다. 일례로 지난 3월초 외환시장에서는 원·엔 환율이 9백50원대를 향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시장에선 원·엔 환율이 급등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엔화 강세가 진행된 데 따른 영향이었다. 이런 상황이 재현될 경우 엔화대출을 받은 기업은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더욱이 은행들은 기업에 엔화대출을 해주면서 옵션부로 원화나 달러 등 다른 통화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을 달아 판매에 나섰다. 갑자기 엔화가치가 상승,다른 통화로 전환하려는 옵션행사가 일시에 몰릴 경우 은행들은 이에 대응해야 하고 이는 외환시장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 ◆문제 해결방법 한국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의 단기 엔화 차입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신 장기차입은 오히려 줄였다"며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비중한도에 다소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미 나간 엔화대출을 급격히 회수해 기업들에 자금부담을 주기 보다는 은행들이 추가 엔화대출을 자제토록 하고 서서히 고삐를 죄나가는 대책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시중은행들도 최근에는 자발적인 외화대출 억제에 나서고 있다. 외환은행은 최근 각 지점에 "외화대출상품의 금리를 상향조정하고 대출한도도 본부와 협의를 통해 결정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외화대출의 속도조절에 나섰다. 삼성선물 정미영 연구원은 "외화 거래가 빈번한 대기업이 아니라면 원·엔 환율에 대한 헤지를 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든다"며 "환위험 대책이 없는 기업들은 낮은 금리만 보고 엔화차입 비중을 늘리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병연·박민하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