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인과의 대화] 둥푸렁 <중국사회과학원 명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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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푸렁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명예소장.
그가 요즘 기회 있을 때마다 꺼내는 말이 '민영(사영)경제'다.
민간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민영기업이 중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의 영향에 대해 "중국 기업들이 체질 변화를 위해 쓴 약을 먹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이징 시내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건물에 있는 연구실을 찾아가자 그는 대뜸 "기자 선생, 신의주 때문에 고생하겠구먼"이라고 말을 건넸다.
한반도 상황을 그만큼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자연히 그와의 인터뷰는 신의주 얘기부터 시작됐다.
[ 만난 사람 = 한우덕 < 베이징 특파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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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신의주특구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북한식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하겠다는 것이겠지요.
중국의 경제특구와 홍콩을 연구했을 겁니다.
신의주 특구가 북한 경제체제에 큰 변혁을 가져올 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긍정적인 일입니다.
북한 발전은 동북아의 경제발전과 평화 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 내에 새로운 발전 모델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놓여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요.
"여러 문제점 중에서도 지역적인 측면이 가장 큰 애로일 겁니다.
신의주는 지역적으로 중국의 단둥 선양 등 랴오닝(遼寧)성과 이웃해 있습니다.
랴오닝은 예로부터 중공업이 발전한 지역입니다.
특구 발전에 필요한 무역 금융 정보기술 등과는 거리가 멀지요.
중국 선전특구가 성공한 것은 이웃에 아시아 금융센터였던 홍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시간입니다.
50만 명에 달하는 주민을 이주시키고,신의주에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구축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한 겁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지도 모릅니다."
-북한의 특구 성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의식 개혁입니다.
개혁개방은 폐쇄적이었던 기존 의식의 틀을 깨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중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사상을 해방하라(思想解放)'는 것이지요.
과거의 잘못된 역사나 의식을 수정하고, 이를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문화대혁명 시대의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려는 정신운동을 벌였기에 가능했습니다."
-남북한 경제협력은 어떤 형태로 발전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프로젝트 베이스로 가야 합니다.
경제 전반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실천 가능한 분야를 선정, 협력을 추진해야 합니다.
한때 유엔 주도로 러시아 중국 한국 일본 북한 등이 공동으로 추진했던 두만강개발 계획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북한이 개방의지를 보이면서 이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할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철의 실크로드, 금강산 개발, 서해안 개발 등 남북협력 프로젝트를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문제로 화제를 돌려보지요.
중국이 WTO에 가입한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WTO 가입이 중국 경제에 미친 영향을 평가해 주십시오.
"기업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은 이제 무한경쟁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선진 외국 기업들이 새로운 경쟁자로 다가왔고, 첨단 기술 및 서비스가 중국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관세인하로 외국 제품과 가격경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중국 기업의 체질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기업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기업은 사라져야 할 겁니다.
그게 바로 WTO 가입의 의미입니다."
-WTO 가입은 중국 기업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지요.
아직 자동차 수입 허가제가 폐지되지 않아 완충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WTO에 가입하기 이전부터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경쟁체제에 돌입했다는 겁니다.
관세인하로 인한 수입 자동차 가격 하락 속도보다 국내 자동차 값 하락 속도가 더 큽니다.
이는 곧 국내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각 자동차업체는 또 가격경쟁과 함께 품질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 기술도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WTO 가입에 따라 노출된 국유(국영)경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민간 분야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민영경제 정책은 무엇입니까.
"기존 민영기업은 자금조달, 시장 신규진입 등에서 국유기업보다 불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국유기업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민영기업은 이제 외국기업이나 국유기업처럼 대우받게 될 것입니다.
민영기업의 '국민대우'가 이제야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WTO 가입 이후 민영경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국유기업에서 발생한 실업을 민영기업이 많이 흡수하고 있습니다."
-중국 민영경제는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습니까.
"올 상반기 24.8% 성장했습니다.
전체 경제성장 속도의 3배입니다.
중국에서 민간 경제가 가장 발달한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를 예로 들지요.
원저우 경제는 작년 35% 성장했습니다.
이는 모두 민간 사영기업의 공과입니다.
민영경제가 중국경제를 곧 주도하게 될 겁니다.
민간 자금은 이제 공격적으로 투자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저장성의 8개 지방 상업은행은 최근 사영기업에 주식을 개방했습니다.
사영기업이 민간은행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다음달 열릴 제16기 당대회에서 사영기업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는 중국의 정치 경제 역사에 획을 그을 사건입니다.
특히 장쩌민 주석이 제기한 '3개 대표(三個代表)' 이론은 민영경제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공산당이 생산력, 구체적으로는 기술의 발전을 위해 앞장선다는 것입니다.
기술발전의 주체는 바로 민영기업입니다.
새롭게 등장할 권력층은 국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개혁개방을 심화시킬 것입니다."
-중국이 21세기 '세계 공장'으로 등장할 것인지의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공장은 산업혁명 후 영국에서 시작돼 미국 일본 등으로 옮겨왔습니다.
21세기는 중국이 그 역할을 할 것이라는게 세계공장 논쟁의 핵심입니다.
중국을 현재 세계공장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정도로는 말할 수 있겠지요.
풍부한 노동력 등 제조환경이 뛰어나고, 기술력도 향상돼 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21세기 세계공장은 이전과는 다른 조건에서 탄생할 겁니다.
지금은 정보통신의 시대입니다.
중국의 핵심 기술 능력은 여전히 떨어집니다.
중국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전자레인지의 경우 핵심부품은 모두 외국에서 사들여온 기술입니다.
중국이 제조업만으로 세계공장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국과 중국의 협력방안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그동안 양국간 기업 협력은 주로 '생산합작'이 주를 이뤘습니다.
자동차 철강 정보통신 섬유 등 많은 분야에서 기업들이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겼습니다.
이제는 '자본과 생산의 합작' 형태를 고려해볼 만합니다.
자본참여 또는 흡수합병(M&A) 등을 통해 중국 기업을 경영하자는 것입니다.
중국은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국유기업도 외국 자본에 개방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은 금융분야입니다.
한국 금융기관의 중국 진출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감이 있습니다.
금융은 산업의 혈맥과 같은 존재입니다.
많은 금융기관이 중국에 진출할 때 비로소 다른 분야 산업의 중국 진출도 원활해집니다.
중국 금융시장 개방을 주의 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각에서 한.중.일 3국 경제통합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3국간 경제협력 관계는 날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자금 기술 관리기업 해외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중국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 및 저비용 생산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협력의 분야는 넓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장애가 있습니다.
바로 역사의 문제입니다.
일본 우익세력은 3국의 경제협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간 신뢰회복, 정치상의 신용문제 해결 등이 선결돼야 통합경제는 가능할 것입니다."
< woodyh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