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권을 출입하는 기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은 신한금융지주회사의 라응찬 회장(65)일 것이다. 조흥은행 인수 추진건으로 뉴스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요청을 모두 뿌리치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 주말 라 회장의 자택으로 무작정 찾아간 기자도 빗속에 한참을 문밖에서 기다리다 "다음주에 한번 만나자"는 약속만 받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렇게 어렵사리 만난 라 회장은 여전히 조흥은행 인수 추진건에 대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아직 결정된게 아무것도 없어 얘기해줄 만한 뉴스거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의향서를 제출하고 난 뒤 요즘 일과에 대해서도 "집무실에서 일상 업무를 챙긴다"고 짧게 답했다. 조흥은행 인수 추진 배경에 대한 질문엔 "역사 깊은 대 선배은행으로서 항상 매력있는 은행이라고 생각해 왔다"는 말로 대신했다. 라 회장의 이런 짤막한 답변들은 그가 이번 조흥은행 인수건을 얼마나 신중하게 추진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자칫 한마디 잘못 말했다간 인수작업에 지장을 초래할까봐 몸을 사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원래 스타일이 이렇게 마냥 조심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신한은행 사람들은 그의 경영스타일이 '서두르지는 않지만 기회가 오면 몸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이번 조흥은행 인수전 참여도 그같은 스타일이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은행권의 이합집산 동향을 살피다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과거 신한은행장 시절에도 라 회장은 소신과 결단력 있는 행장이었다는게 은행 안팎의 평가다. 그는 행장시절 정치권이나 정부 관료들의 대출청탁을 자르고 한보 등 부실채권을 과감히 회수했다. 덕분에 주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 국내 은행장으로선 처음으로 3연임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신한은행의 한 전직 임원은 "지난 91년 신한은행장에 첫 취임한 날 라 회장이 '상고 출신으로 은행장이 된 내가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신한은행 발전을 위해 내 몸을 태우고 재가 돼서 떠났겠다'고 한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라 회장은 지주회사 회장으로 취임한 후에도 "은행이 합병으로 규모를 갖추고 지주회사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 물러나겠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조흥은행 인수 추진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신한지주의 조흥은행 인수가 과연 성공할지 여부에 관심이 더해지는 또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 ----------------------------------------------------------------- [ 약력 ] 1938년 11월25일생 선린상고 야간부 졸업 농업은행 입행(59년)-대구은행 비서실장(75년)-제일투자금융 상무(79년)-신한은행 상무(82년)-신한은행장(91~99년)-신한은행 부회장(99년)-신한금융지주회사 대표이사 회장(현재) 부인 권춘강(59)씨와 3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