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정을 한번 해보자. '목동이 양떼를 몰고 들판에 나갔다. 그때 늑대가 나타나서 양을 해치려고 했다. 목동은 늑대를 쫓았다.' 이를 두고 양과 늑대는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양은 목동을 생명의 은인이요 평화의 수호자라고 칭송할 것이고,늑대는 자유경쟁의 방해자라고 비난할 것이다. 입장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경우,그런 일 자체가 없었다고 잡아떼기도 하고,양이 물려 죽었다거나 늑대가 죽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하기 일쑤다. '진실게임'이라는 TV프로가 있다. 가짜들 속에 진짜를 한사람 섞어놓고 그를 고르는 게임이다. 진위(眞僞)를 구별하려고 여러 질문을 하지만,가짜들의 연기력이 뛰어나 진짜를 찾아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예상이 빗나가는 경우가 허다해서 시청자의 흥미를 끈다. 모두 가난하던 시절 국민학교 교실에서는 연필이나 노트 같은 걸 훔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건을 잃어버린 아이가 울면서 선생님께 호소하면 선생님은 모두 눈감으라고 해놓고 훔친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누가 손을 들었는지 선생님만 알뿐,선생님은 범인을 보호하면서 조용히 그 일을 수습했다. 그 때는 '남의 것 훔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도둑질과 거짓말이 횡행하던 시대상황을 반영했던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짓말이 기승을 부린다. 잘못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할 선생님이 없다. 남북정상회담 뒷거래용으로 4천억원이 부당 대출됐다면서 그 배후에 권력실세의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편에서는 그런 일 없다면서 발설한 자를 고소했다. 국민들은 진상을 다 짐작하고 있는데도 의미없는 진실게임을 하고 있다. 계좌추적을 하면 금세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서해교전 발발 직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지적했는데 국방장관은 이를 묵살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부인한다. 병풍(兵風)을 둘러싼 지루한 싸움도 여전히 계속된다. 녹음테이프가 원본인가 사본인가를 두고 씨름을 하더니,이제는 병풍조작을 나타내는 문건이 나왔다고 한다. '증거 있다,증인도 있다'고 기세좋게 공격하던 쪽이 수세에 몰리는가 하면 어느새 또 공격이다. 이제는 양도 늑대도 아닌 목동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개구리 소년의 사인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우리는 안다. 하지만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의 진상을 밝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상이 밝혀지면 낭패를 당하는 사람이나 조직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일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이해인 수녀가 쓴 시의 일부다. 한가지 사실을 놓고 서로 다른 말을 한다면 어느 한쪽은 거짓임에 틀림없다. 병풍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김 아무개라는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재경부차관과 은행 총재,대통령 비서실장 국방장관을 지낸 분들,현역 장군,금감위원장의 면면을 보면 그들의 말 한마디는 천금의 무게를 가질만 하지 않은가. 그런 그들이 서로 엇갈리는 말을 한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정당의 대선후보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던 분은 '국민경선은 사기'라고 했다. 사기인지 아닌지는 덮어두더라도,그렇다면 그는 사기극을 주도했다는 말이 된다. 국제경제는 물론 국내경제도 몹시 불안하다. 부동산시장에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일었고,가계빚은 늘어 신용거품이 꺼질 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증시 움직임을 보는 많은 투자자들은 허탈상태에 빠지고 있다. 정치권은 이전투구에 여념이 없다. 그런 정치권에 관료들은 줄서기 한다는 소리도 들리고,공직사회의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한다. 관료들의 이런 행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서기 잘한 덕을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줄서기는커녕 '정권에는 임기가 있어도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면서 경제를 챙기는 관료가 왜 없겠는가. 그런 관료를 기억하고 보호하고 아껴야 한다. 그들은 바로 국민의 편이기 때문이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