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주겠다는 제의가 왔을 때 사실 조금은 망설였습니다.명예박사란 학문을 연구한 업적도 없는 사람에게 사회적 명성에 따라 걸어주는 치장품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요." 지난 97년 9월 조용준 한국화이바 회장은 조선대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주겠다고 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그의 최종 학력은 담양초등학교 졸업. 그러나 김기삼 조선대 총장은 그의 명예박사 수여식에서 "복합소재에 관한 조 회장의 업적은 박사학위 이상으로 훌륭한 것"이라며 그가 국내 소재분야에 미친 영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며 어린 시절의 쓰라린 기억과 자신의 노력에 대한 사회의 고마운 평가가 뇌리에 교차해 "가슴 속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명예박사,특히 기업인들에게 주어지는 명예박사 학위를 대학에 적당히 기부나 해주고 얻는 단순한 명예증서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조 회장의 경우처럼 온갖 고생을 겪으며 기업을 일구고 국가경제와 사회에 공헌한데 대한 일종의 보답이다. 개인의 영광에 그치는 게 아니라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이고 자극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한국의 현대화에 기여한 공로로 국내외 대학으로부터 공학 경영학 경제학 등 모두 9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82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경영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행한 그의 연설은 소박하기만 하다. "나를 세계적인 대기업을 경영하는 한국인,자본가로 평가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포스코 신화의 주역,박태준 명예회장은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으로 키워낸 공로로 미국 카네기멜런대,러시아 모스크바대 등 해외 대학에서만 공학,금속,경제학부문 명예박사 학위를 5개나 받았다.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은 경제학 철학 체육학을 넘나든 명예박사 3관왕이다. 구자경 LG 명예회장 역시 국내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업적으로 고려대와 연세대가 86년,99년 각각 경제학과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2000년 서울대에서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가 개교한 이래 내국인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한 것은 6번째. 외국인을 포함해도 명예 경영학 박사는 이 회장이 처음이었다. '기술과 인재를 자본 삼아 반도체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공로. 이 회장은 학위 수여식에서 "국내 과학기술진흥과 인재육성에 더욱 매진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알겠다"면서 "앞으로 삼성은 세계일류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산학협력을 통한 과학기술 진흥과 인재육성에 헌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약속을 실천해 내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지난해 1월 몽골 국립대에서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몽골 국립대가 양국간의 자동차산업 및 경제교류 활성화에 공헌한 정 회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미국 코네티컷대학에서 명예인문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은 한양대에서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외환위기 이전부터 발빠르게 구조조정에 나섰고 국내 프로야구 붐 조성,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한 점 등이 인정됐다.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대만 문화학원 명예철학박사,프랑스 루앙대 명예경영학 박사,한국해양대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미국 엠브리 리들 항공대로부터 명예항공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서강대 명예경영학 박사다. 이밖에 허태학 신라호텔 사장,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 사장이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허영섭 녹십자 회장은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