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소명(召命)'인가,'산업'인가? 교육이 소명이라면 학교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국가와 민족의 기대에 부응하고,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교육이 산업이라면 학생이란 소비자를 놓고 다른 교육기관과 경쟁하면서 소비자가 원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이 소명이라면 교육 방향은 학교가 독자적인 철학에 따라 결정해야 하고,교육 내용은 교육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해 편성해야 하며,교육 비용은 국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반면 교육이 산업이라면 교육 방향은 미래사회의 요구에 맞추어야 하고,교육 내용은 학생들이 졸업 후 근무하게 될 기업 등 취업기관이 원하는 바에 따라 결정해야 하며,교육 비용은 소비자인 학생과 취업기관이 내야 한다. 그리고 학생과 취업기관이 외면하는,다른 학교와의 경쟁에서 진 학교는 사라져야 한다. 한국의 교육현실은 어떠한가? 적어도 대학교육에 관한 한,그 동안 우리는 유교문화의 전통하에 교육이 소명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구체화되고 요구가 많아지면서,또 외국 교육기관으로부터 치열한 경쟁이 가해져 오면서,교육이 산업으로 탈바꿈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교육은 소명이란 명분론과,산업이란 실질론의 양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교육이 산업의 면모를 갖게 된 첫번째 원인은 교육서비스에 대한 수급변화다. 전반적으로 '소비자가 왕'인 오늘날,아직 소비자가 줄을 서서 공급자의 처분만을 바라고 있는 시장이 있으니,이는 바로 대학교육이다. 지금까지 대학에서는 시험을 쳐서 소비자를 가려내는,생산자가 소비자를 선발하는 주도적 위치를 고수해왔다. 그 이유는 정부가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입학정원을 제한해왔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대학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나라에서 공급이 제한돼 있으니,공급자인 대학이 절대자로서의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학교육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즉 2003년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정원합계는 74만2천명으로 늘어난 반면,올 11월 6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볼 수험생은 67만6천명으로 줄어들어 수요가 공급의 91.1%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수급 변화는 앞으로 정원을 못채우고,경우에 따라서는 도산하는 대학을 양산할 것이다. 두번째는 교육의 급속한 국제화다. 과거 우리나라의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이 서울대 가기를 희망해왔고,학생들 역시 서울대 문 앞에 줄을 서왔다. 그러나 최근,특히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외국에서 학부를 나오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외국기업이나 금융회사에 취업해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해결사로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서,이제 학생들과 부모들의 목표는 하버드,MIT를 비롯한 외국명문대학이 됐다. 중학생들이 가장 진학하고 싶어한다는 민족사관학교에서 제일 우수한 학생들은 '서울대 준비반'이 아니라,미국 명문대학을 목표로 하는 '유학 준비반'에 모인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정부도 교육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개칭했다. 이제 교육에 대한 소명의식만 가지고 학생들을 이끌어 갈 것이 아니라,사회에서 원하는 유능한 인적자원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정책으로 국내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학자율권 강화,외국대학 분교설치 허가 등 경쟁을 유도하는 체제를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다. 이제 대학은 변신해야 한다. 국내대학간의 경쟁을 회피하거나,외국대학의 국내분교 설치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다른 대학에 없는 특화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다른 대학보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혁신에 실패해 학생들로부터 외면 받는 대학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문을 닫거나 다른 대학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이 소명인 동시에 산업이라는 양면성을 인식하고 인적자원을 미래지향적으로 육성하는 대학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dscho@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