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진정한 의미의 벤처캐피털이 없다." 현재 개점휴업 상태인 국내 벤처캐피털업계의 상황을 꼬집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벤처캐피털이 과연 비즈니스모델이 될 수 있느냐"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제기하고 있을 정도다. 벤처캐피털업체들이 혹한기를 맞고 있다.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인 KTB네트워크 백기웅 대표가 최근 전격사임을 발표해 관련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백 전 대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위해 용단을 내렸다"고 사임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벤처캐피털업계가 처한 현실 등을 감안하면 단순히 '감원'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얽히고 설켜 있다. 벤처캐피털의 어려움은 코스닥시장 등 한국증시의 장기침체와 맞물려 있다. 여기에 당국이 상장(등록)요건을 대폭 강화해 문을 꼭꼭 걸어 잠그다 보니 투자금을 회수할 길도 요원해졌다. 어렵사리 상장시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투자한 주식이 3개월 가량 록업(보호예수제도)에 묶여 있어 수익을 낼 수 있는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투자금을 회수해 다시 신생벤처기업을 발굴,투자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리 없다. 벤처캐피털업체들은 "당국이 퇴출과 등록창구를 동시에 막아 결과적으로 부실기업은 살리고 우량벤처는 죽이고 있다"며 "증시의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투자자보호'제일주의와 맞닥뜨릴 때마다 명분이 약해진다. 주식시장을 '머니게임'의 장으로 활용했던 일부 벤처비리도 캐피털업체들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벤처캐피털업체들도 주식시장에만 목을 매는 '천수답경영'에서 탈피해 점차 수익모델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구조조정투자와 부동산시장 진출이 그 예다. 그러나 벤처캐피털의 본업은 벤처투자다. 증시침체 등으로 벤처캐피털들이 지나치게 움츠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벤처는 속성이 모험이다. 쪽박이 있으면 대박도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 더욱 적극적으로 우량벤처에 투자해야 진정한 벤처캐피털이라는 벤처기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손성태 산업부 벤처중기팀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