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의 주요언론들은 17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와의 역사적인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대미 대화 재개 의사 등 국제사회에개방 메시지를 보냈다고 논평했다. 두 신문은 또 김 위원장이 공작원들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 사과한 것을 "이례적이고 놀라운 사건"으로 논평한 뒤 북한이 경제난 및 외교적 고립 상황등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및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적극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신문들은 그러나 "일-북 정상회담이 양국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고이즈미 총리 말을 인용하면서 일본이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과 대량 살상무기 등 안보 사안보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다룸으로써 미국측의 신경을 자극한 점도 없지 않다고 논평했다. 다음은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의 논평을 각각 요약한 것이다. 일본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17일 평양에서 개최한 역사적인 정상회담에서 수십년에 걸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다음 달부터 국교 정상화 회담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이번 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특히 북한 공작원들이 일본인들을 납치했음을 시인한 뒤 사과하는 등 "깜짝 놀랄만한" 모습을 보여줬다. 김정일위원장은 또 고이즈미 총리에게 미국과의 대화 희망 의사를 전해주도록 요청하는 한편 미사일 발사 실험을 2003년 이후까지도 무기한 유예하는 등의 중대한 양보를 했으며 이는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이 그동안 안보 문제 등과 관련해 전통적으로 미국의 정책을 줄곧 지지해온 점과 달리 이번 회담에서 자국민 납치 문제 등에 치중하느라 IAEA의 핵사찰 및 플루토늄 전용 등 안보 의제를 깊숙이 논의하지 못하는 등 이례적으로 미국을 의식하지 않은 독단적인 외교를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총리는 이런 점을 감안해 일-북 정상회담이 양국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와 미국 등전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대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납치돼 사망한 일본인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진정시키는 한편 미국 등지로부터도 북한의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 등 국제안보 부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미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일-북 정상회담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북한의 미사일 확산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우려를 제기해준다"고 강조했다. 북-일 정상회담 개최로 동북아 지역에 지속돼 온 냉전의 팽팽했던 긴장감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으며 특히 김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한 것은놀라운 일이다. 양국 정상은 사상 처음으로 만나 수교협상 재개 등을 담은 공동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중무장한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는 한편 냉전의 마지막보루인 한반도에도 평화를 가져오는 초석을 쌓을 수도 있게 됐다. 특히 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무기한 동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핵 사찰 허용 등 중대한 양보를 한 지 하루도 못 돼 이라크도 유엔 무기 사찰단의사찰을 무조건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북-일 정상회담의 결과를 우선 평가한 뒤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워싱턴의 전.현직 관리들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북-일 양국이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함에 따라 평양과의 직접 대화를 더 이상 질질 끌기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무부 관리를 역임한 전략 국제연구소(CSIS)의 조엘 위트 연구원은 "미국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평양으로 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은 북한과의 긴장된 관계가 완화되면 이라크에 대한 무력시위 등 테러와의 전쟁에 더욱 주력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조지타운대의 빅터 차 교수는 "북한이 오늘(17일) 발표한 내용은 안보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이 아니다"면서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들은 북-일 정상회담 내용을 새로운 것으로 간주하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회의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양국 정상회담 내용을 보면 '은둔의 왕국'인 북한이 지난 반세기동안 서방을 향해 구축했던 적대적인 고립주의를 벗어던지기 시작했음을 나타내준다. 북한은 일본과의 전격적인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2년간 한국과의 정상회담 개최와 유럽연합(EU) 등 세계 주요국들과의 연이은 수교 등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왔다. 지난 7월의 가격제 자유화 등 자본주의적 제도 도입도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조짐들이다. (서울=연합뉴스) 홍덕화기자 duckhwa@yna.co.kr